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페에서 책 읽기 Dec 17. 2018

댄의 크리스마스

춤추는 댄의 크리스마스


처음 마주친 세계는 어떤 자국을 남긴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인생 처음으로 본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은 뮤지컬 자체를 좋아하게 만들어줬다. 데이먼 러니언의 단편을 바탕으로 한 이 뮤지컬은 한 세기에 대한 로망 같다.

러니언의 단편을 검색해 읽어보긴 했지만 단행본으로 읽으니 일관된 흐름이 보였다. 마리오 푸조에 의해 갱들의 코스튬이 갖춰지듯 데이먼 러니언의 작품들은 재즈시대를 매뉴얼화한다.

러니언은 금주법 시대 밀주 제조를 둘러싼 갱들의 이권 다툼, 쇼 비즈니스의 빛과 어둠, 거리마다 넘쳐나던 도박꾼과 사기꾼에 반짝거림을 입혀 윤색했다. 때문에 시대성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혐오나 미화된 폭력이 점철되어 있다. 그럼에도 구시대의 작품들, 특히 당대 최고로 트렌디했던 작품들이 세월이 지난 후 드러내는 촌스러움이 없다. 이제는 사라지고만 촌스러운 순정과 애틋함이 작품 전반을 받치고 있는데 말이다.

아마도 시치미 떼는 러니언의 화법 덕일 것이다. <춤추는 댄의 크리스마스 Dancing Dan’s Christmas>도 작은 조각들로 아이러니를 꾸려내는 러니언의 특기가 잘 살아있다.

알 허쉬펠드 Al Hirschfeld가 그린 <Guys and Dolls>의  캐리커처, 1950





크리스마스 이브, 화자인 ‘나’는 ‘굿타임 찰리’와 애정 하는 밀주를 즐기고 있다. 나이트클럽과 여자들 사이를 전전하며 춤추는 것으로 먹고사는 ‘춤추는 댄’이 합류한다. 잘생긴 댄은 언제나 유쾌하고 심지어 배짱도 있다. 난폭함에서 밀리지 않는 ‘하이네 슈미츠’가 눈독 들인 댄서 ‘뮤리엘 오닐’과 매번 거침없이 춤춰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술이 주는 호기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해가던 중 댄은 갑자기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분위기에 취해 산타클로스 역할을 하고 싶어진 주정뱅이들은 오닐 양의 할머니를 상대로 정한다. 아흔몇 살인지도 모를 할머니는 노환으로 오늘내일하는 처지이다. 순박한 할머니는 그 나이에도 산타클로스가 멋진 선물을 채워주리라 믿으며 양말을 건다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자존심 센 오닐 양은 남자들의 동정이나 수작을 거부했기에 할머니의 양말은 늘 오닐 양의 사소한 선물로만 채워졌다.


오닐 할머니의 변변찮은 집에 도착한 댄은 언제 준비한 건지 화려한 보석들을 줄줄이 꺼낸다. 할머니의 양말에 보석으로 가득 채운 후 다이아몬드 케이스로 마무리하는 댄을 보자 나는 메이든 거리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 상점이 털렸다는 기사가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댄은 홀로 일하는 ‘손들어*’ 중 몇 손가락 안에 든다는 소문도 기억난다. (*강도. 원문 lone-hand git-'em-up guys)


지독한 숙취로 괴로운 크리스마스 이후 며칠이 지나고 굿타임 찰리가 오닐 할머니의 죽음을 알려줬다. 의사 말로는 양말 안의 깜짝 선물을 보고 기쁜 나머지 하루를 더 견딘 거라고 한다. 사실 할머니 양말 안의 많은 보석들은 모두 ‘샤피로’라는 상인이 도난당한 것이다. 보석의 행방을 알고 찾아온 샤피로가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할머니에게 보석이 의지가 될 거란 의사의 말을 듣고 선뜻 협조한 것이다. 물론 샤피로의 보석이 어떻게 몽땅 양말에 들어갔는지 누구도 끝내 알 수 없었다. 할머니가 기쁨 속에 안식한 후 샤피로는 자신의 보석을 돌려받는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 다시 크리스마스 시즌, 나는 댄의 선행 아닌 선행이 어떤 형태의 보답을 받았는지 알게 된다.





현대문학 판본은 분위기를 구현해내기 위해 무척 애쓴 번역이다. 매끄럽지 못한 부분들이 종종 보이지만 러니언식 화법이 가지는 독특함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러니언 작품이 주는 진짜 즐거움은 읽어나가는 문장에 있기에 요약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짝사랑하는 여자의 진짜 행복에 목숨 거는 도박꾼, 주정뱅이 고양이, 오랜 앙숙의 아이를 구해주고 짐짓 빈정대는 갱, 육아가 최고 목표인 한물 간 도둑 등 미워할 수 없는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소동은 뮤지컬의 한 챕터처럼 흥겹게 흘러간다.

러니언의 주인공들을 현실에서 만났다면 쉽게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은 알게 되기까지 너무 많은 상처나 폭력을 행사하니까. 그럼에도 삶에 대한 러니언의 낙관적인 태도-유쾌함, 따스함, 조건 없는 선의와 장난 섞인 호의는 크리스마스라면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출처/ 

Dancing Dan's Christmas, Damon Runyon, 1932

데이먼 러니온; 춤추는 댄의 크리스마스 (현대문학, 2013, 번역 권영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