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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Dec 21. 2018

투드와 퍼들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전에 돌아갈게 / 눈이 왔으면


문득 바라본 아파트 층마다 따스한 불빛이 번져 있다. 번갈아 점멸하는 남의 집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썰렁한 공원에서 올려다보고 있자니 어쩐지 성냥팔이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부질없이 성냥불을 그어대듯 목적 없는 이 조급함을 설레임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한시성에 기민해지는 12월에는 사소한 순간마저 유독 먼 과거가 된다.


돼지가 귀엽지 않기는 너무 힘들다! 홀리 하비의 ‘투드와 퍼들’은 이언 팔코너의 ‘올리비아’와는 또 다른 감당 못할 매력을 과시한다. <투드와 퍼들 Toot & Puddle> 시리즈는 서사보다는 이미지로 생명력을 드러낸다. 절판되긴 했어도 시리즈 대부분이 완역되었는데 원화가 간절하게 보고 싶어 지는 이미지들이다. 

작가인 홀리 하비에게 범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져다준 것은 그녀 자신과 이름이 같은 캐릭터였다. 푸른 보닛을 쓰고 패치워크 앞치마를 두른 소녀는 공통의 유년을 소환한다. 풍부한 자연환경 속에 성장한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준 기억 속 풍광들을 귀요미 돼지들을 통해 펼쳐낸다.

배경이 되는 우드콕 포켓 숲은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보드랍고 화사한 초록, 낙엽 가득한 황금빛 시간과 쌉싸름한 대기는 수채화의 농담 속에 번져간다. <투드와 퍼들> 시리즈는 배경이 없는 페이지조차 유려한 풍광을 연상시킨다. 안이한 서사는 드라마랄 것도 없으며 둘의 우정도 동화책에서나 가능한 순도이다. 그럼에도 무해한 낙관으로 채워진 일상이 판타지일 수밖에 없는 오늘을 살기에 매번 하비의 숲에 매료되고 만다.

Holly Hobbie's Nursery Rhymes (이미지 출처: https://www.silvershoesandrabbitholes.com)
<투드와 퍼들> 시리즈


시리즈 중 <I'll Be Home For Christmas, 2001>는 투드가 거친 눈발을 뚫고 우드콕 포켓으로 돌아오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이다.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투드이지만 크리스마스는 가장 좋아하는 이와 보내고 싶으니까.

퍼들은 좀 헛헛하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함께 하자는 투드의 거듭된 당부가 지켜질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준비는 서둘러야 한다. 반짝임의 시간은 너무 짧으니까. 

낙심의 순간, 기대치 않은 우연은 빛을 발한다.


<Let It Snow, 2007>는 두 친구가 서로의 선물을 고심하는 내용이다. 예쁜 것이든 필요한 것이든 서로에게 온전한 즐거움을 주고 싶다. 그 선물을 완벽하게 매듭지어주듯 기다리던 눈이 숲을 하얗게 포장한다. 포장이 벗겨진 후 둘은 서로에게 선사한 시간들이 진짜 선물임을 깨닫는다. 투드와 퍼들 앞에 눈부신 설경이 펼치는 순간, 에디 히긴스 트리오의 크리스마스 앨범이 자동 재생될 것이다.





누구나 가장 큰 선물을 주고 싶은 상대는 나 자신 아닐까? 타인을 위한 선물도 기실 자기만족을 위한 작은 의식일 뿐이다. 같은 무게로 돌려받지 못한 결핍마저 스스로의 충족감으로 채워진다.

흔적을 남기지 못했어도, 무엇이 되지 못했어도 괜찮다.

떨어져 있어도 같이 있을 때만큼 충만감을 주는 누군가는 분명 격려만이 정답임을 알고 있다.

혼자서도 충분히 완벽한 순간을 만끽할 수 있지만 기다리는 이들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

크리스마스에 집으로 돌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출처/ 

투드와 퍼들 시리즈, 홀리 하비 (Toot & Puddle, Holly Hobbie, 1998-2007)


I'll Be Home For Christmas (Little, Brown Books, 2001)

크리스마스 전에 돌아갈게 (삐아제어린이, 2008, 번역 조세형)


Let It Snow (Little, Brown Books, 2007)

눈이 왔으면 (삐아제어린이, 2011, 번역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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