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페에서 책 읽기 Mar 02. 2016

2월의 고백은 3월에 되돌아오지 않는다.

너의 이름은 Mr.발렌타인


대한민국 대표 순정만화 작가를 꼽을 때면 황미나 작가는 취향과 무관하게 우선순위로 언급된다.

<아뉴스데이>, <이오니아의 푸른 별> 등 일본풍 로맨스를 그려 오던 황미나 작가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드라마틱한 서사로 변주한 <굿바이, 미스터 블랙>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이어 발표한 <불새의 늪>으로 팬덤을 공고히 하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는 다작 작가이다. 

여성 작가군을 독려하며 국내 순정만화의 구조적 기틀을 다지기 위해 부단했다. 이후 황미나의 지지 아래 등단한 오경아, 김혜린 작가 등을 생각해보면 이 시기 황미나 작가의 인기몰이 자체가 이미 국내 순정만화계의 르네상스를 예고한지도 모르겠다.


제목부터 소위 ‘소녀감성’으로 무장한 이 두 권짜리 중편은 순정만화의 다양성이 부흥되기 전 아날로그 소녀만화의 전형을 모두 보여준다. 밝고 사랑스러운 소녀가장과 냉소적인 시한부 소년, 건네지 못한 마음, 엇갈리는 고백을 엽서로 전하는 라디오 사연과 서정시 삽입으로 대체되는 인물의 감정선. 당시 독자들이라면 모두들 작품 내 삽입된 이형기의 시 <낙화>를 외우고 있을 것이다.

순정과 신파의 클리셰로 범벅된 이 작품의 기본 감성은 1990년대 훨씬 이전, 1970년대 청춘물이 연상되는 오래되고 전형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 전형성을 무기로 초라한 현실과 첫사랑의 비극을 담담한 단막극으로 그려냈다. 마치 내게도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애틋한 기억처럼 말이다.

만화의 인기로 라디오에도 종종 신청되던 이형기의 시 '낙화'




출판사에 근무하는 ‘주희’는 명랑한 성격의 소녀가장이다. 편집장의 이복동생 ‘영’과 마주친 이후 서로의 첫인상은 까칠하기만 하다. 라디오 듣기가 취미인 주희가 이런 자신의 일상을 사연으로 보내던 어느 날, 그녀는 ‘Y’라는 이니셜의 청취자에게 의문의 사연을 받는다.

미국에서 엄마의 무관심 속에 살던 영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다. 절망에 빠진 그는 심정적으로 의지해 온 이복형을 찾아왔다. 거듭 마주치는 주희의 엉뚱함과 명랑함에 영은 또래 특유의 낙천성을 조금씩 찾아간다.

이 감정과잉은.. 80년대니까여.. 스케이드 보오-드를 타던 신세대 시퀀스는 차마 못 올리겠네여;;;


주희는 어느샌가 마음을 기울이게 된 영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싶지만 쑥스러움에 선물을 주지 못한다. 그저 쓸쓸한 마음을 담은 사연을 여느 때처럼 애청하는 라디오 프로에 보낼 뿐이다.

겨울도 금세 흘러가버리고 발렌타인데이가 되자 주희는 용기를 내 영을 찾아간다. 그런 주희와 마주친 영의 엄마는 영이 그녀로 인해 미국에서의 치료를 거부한다고 오해한다. 영의 미국행이 치료 때문인 줄 모르는 주희는 그가 곧 떠날 것임에 허전해진다.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게 된 그녀는 혼자 눈물 흘린다.

영의 출국일이 다가오던 중 주희의 부친이 지병으로 사망한다. 장례식장 멀리서 주희를 지켜보던 영은 자신에게도 멀지 않은 죽음에 씁쓸해진다. 주희의 집 앞에서 기다리던 영은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지만 어쩐지 더욱 차갑게 돌아선다.


여름이 되어 주희는 거리에서 우연히 영을 닮은 사람과 마주친다. 한국에 돌아온 진짜 영임을 확인하고 다시 고백하지만 그는 여전히 싸늘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의 날로 인해 영은 끝내 주희를 거부한다. 그럼에도 그리움마저 누를 순 없어 귀국한 것이다. 그런 그를 안타까워하는 형에게 자신의 마음을 절대 알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우울한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지내던 주희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 Y의 정체가 영임을 깨닫게 된다. 영이 세상을 떠나고야 그의 마음을 전해 들은 주희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화면 전체의 여백을 이용, 페이드아웃 시키면서 주인공의 슬픔을 강조한 서정적인 연출



2월의 고백은 3월에 응답으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비극으로 첫사랑의 그림자는 더욱 애틋하지만 과거의 멜랑꼴리는 추억 안에서만 완벽할 뿐이다.

어떤 세대의 청춘을 보냈던 당대의 새로움도 결국 과거가 된다. 시한부의 첫사랑이 없다 해도 기억 속의 날들은 누구에게나 애틋할 것이다. 해서 이 투박한 이야기를 우리는 잊지 못한다. 시간 속에 미화된 이전 세대에 대한 복기도 어느 세대에서건 계속될 것이다. <너의 이름은 Mr. 발렌타인> 또한 지나간 청년기 그 자체에 건네는 오래되고 애틋한 인사 같은 작품이다.





@출처/ 너의 이름은 Mr. 발렌타인, 황미나

너의 이름은 Mr. 발렌타인 (송천문화사, 198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