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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Mar 27. 2016

달의 찻집, 강경옥의 요재지이


어쩔 수 없이 대한민국의 순정만화는 직, 간접적으로 일본풍에 닿아있다. 로열패밀리와 출생의 비밀로 귀결되던 로맨스는 1980년대 중반쯤부터 변화가 감지된다. 대본소 시절 ‘아직 발견되지 못한’ 작가들은 <르네상스>, <댕기>와 같은 플랫폼을 기폭제로 내러티브의 확장을 시작한다.

화풍은 순정의 외피를 쓰고 있었지만 서사는 연애담에 국한되지 않았다. 부차적 배경으로나 쓰이던 역사를 비롯해 SF, 스릴러, 개인주의, 미약하나마 페미니즘의 자각도 드러낸다. 작가별 데생의 편차는 차치하고 포토샵 없이 장인정신으로 그려진 도제식 원고들을 생각하면 더욱 놀라울 뿐이다.


그중 강경옥 작가는 작품마다 도드라진 소재로 데뷔와 동시에 열광적인 팬덤을 구축한 작가이다.

기민한 인물들은 뜨겁거나, 기이하거나, 거대한 이야기들을 그저 덤덤히 소화한다. 데뷔 초 부실하던 그림체도 장편을 거치며 프로포션이 정리된 특유의 화풍으로 자리 잡는다.

강경옥의 작품에는 언제나 우주, 밤이 주는 경외감과 서정성이 포함되어 있다.

대표작인 <별빛 속에>는 말할 것도 없고 <라비헴 폴리스>, <노말 시티> 등 작품마다 직, 간접적인 동경이 비친다. 데뷔작 <이 카드입니까?>에선 이런 동경이 서정적인 공간으로 변주되기도 했다. 빌리 조엘의 노래가 울려 퍼지던 레이아의 창가를 떠올려 보자.


또 한 가지 특징은 순정이란 장르와는 대척점에 있을법한 ‘호러’이다.

강경옥의 호러는 시각적 공포 없이 감정만으로도 잘 벼려진 서늘함을 구현한다. <두 사람이다>, <레이블 호수>처럼 결론이 명확할 때도 있지만 그 공포가 매번 주인공의 운명을 확실히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열린 결말들은 찜찜함 보다는 소슬한 반추를 하게 만든다.

이런 특징이 모두 녹아있는 <달의 찻집>은 데뷔작 <이 카드입니까?>에 권말 부록으로 수록된 작품이다. 낭만적인 제목의 이 짧은 단편은 ‘강경옥식 요재지이’를 확연히 느끼게 해준다.




독서실에서 시험공부 중이던 ‘나’는 충동적으로 새벽 거리 산책에 나선다.

초겨울 새벽 3시, 어둠에 잠겨 모형 같은 거리에서 심야 영업 중인 카페를 발견한다. 그 밤과 어울리게시리 ‘달의 찻집’이란 이름의 카페는 소박하고 편안하다. 나는 친절하고 붙임성 좋은 주인과 담소를 나누게 된다.

충동적으로 나선 밤의 거리는 낯선 인상이다.
강경옥 작가가 즐겨 그린 여우 캐릭터

쏟아질 듯한 별빛의 밤이 주는 완벽함, 그럼에도 무언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함이 내내 맴돈다.

다음날 나는 지난밤의 카페를 찾아 나서지만 어느 곳에도 그런 카페는 없다.

그리고 문득 어젯밤 부족했던 한 가지가 무엇이었는지 깨닫는다.




<이미지 퍼즐>은 단편 모음집인 만큼 그 안에서도 몇 개의 그룹이 있다. <무덤>, <인어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같은 한국형 호러(?)부터 <냉장고 이야기>, <불쌍한 사람들> 같은 개그툰까지 강경옥 작가의 시기별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달의 찻집>은 <로맨틱 나이트>, <선물>과 더불어 공간이 던져주는 공포에 가까운 동경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제목 때문에 예측 가능한 결말에도 전면 가득 별이 쏟아져 내리는 아름다운 장면이 낭만적인 기대를 품게 한다. 이런 기대는 이내 결말의 소슬함을 배가시킨다.

어떤 교훈을 주입하기보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채 지나쳤을 우연의 괴담을 곱씹게 하는 강경옥 작가의 인장이다.





@출처/ 달의 찻집, 강경옥

이 카드입니까? 5권, 달의 찻집 (프린스, 1986)

이미지 퍼즐, 달의 찻집 (반디,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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