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화할 수 없겠지만 아마도 소년들이 <빨강 머리 앤>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소년물에 흥미가 없었다. 페인트칠 에피소드를 빼면 <톰 소여의 모험>이 딱히 재미있지 않았다. 집거위 몰텐과 함께 뜻하지 않은 여행에 나선 닐스도 톰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다. 하지만 게으르고 제멋대로이던 이 소년의 모험이 흥미진진한 것은 그가 지나온 풍경 때문이다.
풍요함과 혹독함의 수위가 비슷한 자연 때문일까? 북구의 작품에는 언제나 자연에 관한 소회가 녹아있다. 노벨문학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이기도 한 셀마 라게를뢰프는 자국 지폐에도 실린 스웨덴의 국민 작가이다. 라게를뢰프 또한 악동 소년의 성장담을 통해 모국의 아름다움과 오래된 전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펼쳐낸다.
라겔를뢰프는 옴니버스식 에피소드로 이뤄진 여정에 주인공의 변화를 중첩시킨다.
작품 내 스웨덴 남단 스코네에서 시작해 북단 라플란드를 거쳐 회귀하는 기러기들의 여정은 자연의 법칙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아름다운 풍광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공업단지의 이물감도 대비된다. 이런 이물감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보다 인간이 자행하는 폭력에 의해 더욱 심화된다. 부감으로 펼쳐지는 관찰자의 시선은 관조하듯 양쪽을 오가며 멀거나 가까운 풍경을 반추한다.
기러기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 속 인간은 너무나 초라하다. 그럼에도 닐스는 불가항력의 상황이 닥쳤을 때 엎드리고만 있지 않는다. 때로는 숭고하기까지 한 선택을 해 자연에 예속된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책임과 궁극적인 존재 이유를 일깨운다. 때문에 이들이 자연 속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애틋하기까지 하다.
일러스트를 그린 야구루마 스즈시는 팬시한 캐릭터와 화사한 색감 덕에 금성 전집 내에선 주로 모험물을 담당하는 듯하다. 같은 전집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걸리버 여행기>, <꿀벌 마야의 모험> 역시 그의 작품이다.
스즈시가 그린 <닐스의 신기한 여행>은 이야기만큼 역동적인 화풍과 구도로 화면을 장악한다. 설정상 부감으로 잡히는 장면도 많은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활공에서 느껴지는 통쾌한 아름다움이 녹아있다. 등장인물의 캐릭터 디자인 또한 감각적이고 아름답다.
애지중지 키워진 닐스는 약한 것들에 서슴없다. 집거위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몰텐의 꿈은 허영으로 떠 다닌다. 길 위의 날들은 악동이었던 소년을 사려 깊은 청년으로, 한계에 도전한 거위로 변화시킨다.
같은 햇빛과 비바람을 건넌 기억으로 이들은 인생의 남은 여정 또한 씩씩하게 걸어갈 것이다. 아름다운 대열로 선회하는 기러기떼를 볼 때면 언제나 애틋한 마음을 품은 채.
대부분의 우리는 높이 날아오르기는 커녕 스스로 서는 것조차 힘겨운 어른이 되었다. 그럼에도 어디든 갈 수 있는 큰 날개를 가지길 꿈꿨던 어린 시절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결국 높은 곳을 바라보며 부풀린 열망이 이곳까지 나를 데려왔기에, 거듭된 실수와 후회에도 조금 더 나은 이가 되고자 하는 결심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그런 희망과 반성을 안고 계곡과 숲을 빠짐없이 지나는 것이 인생이니까 말이다.
@출처/ 닐스의 신기한 여행, 셀마 라게를뢰프 (Nils Holgerssons underbara resa genom Sverige, Selma Ottilia Lovisa Lagerlöf, 1906)
금성 칼라명작 소년소녀 세계문학 18권 북유럽 편, 닐스의 신기한 여행 (금성출판사, 1979, 번역 김영일, 일러스트 야구루마 스즈시 矢車 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