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들썩하게 겨울을 몰아내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의식. 동, 서양이 묘하게 닮아있는 계절맞이는 소망의 깊이 또한 다르지 않다.
<우즐리의 종소리>는 스위스의 전통 축제 ‘칼란다 마르츠 Chalandamarz’를 통해 봄의 환희를 되새기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3월 첫날에 열리는 봄맞이 축제 칼란다 마르츠는 마을의 어린이들이 종을 치고 돌면서 겨울을 몰아낸다. 작품에도 설명되어 있듯 가장 큰 종을 맨 사람이 선두에서 행렬을 이끈다.
<월간 꿈나라>의 편집분으로 읽었던 <우즐리의 종소리>는 수록된 권을 분실했다. 무척 좋아했던 동화임에도 오랫동안 ‘울리와 큰 종’이라는 불확실한 제목과 어렴풋한 기억만 맴돌았다. 셀리나 쇤츠 연작을 읽다 발견한 기억 속의 이 작품은 반갑게도 일러스트 또한 동일했다.
셀리나 쇤츠의 대표작 <여름 산 아이 플루리나 Flurina und das Wildvöglein, 1952>, <눈보라 치던 날 Der grosse Schnee, 1957>는 고향인 알프스를 소재로 한 연작들이다. 이 연작 중 한편인 <우즐리의 종소리>는 자국에서 <하이디>만큼 유명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러스트를 맡은 알로이스 카리지에는 알프스의 설원이 연상되는 흰 여백을 이용해 우즐리의 봄맞이를 투명하게 묘사한다. 두 작가 모두 알프스 출신이기에 장면마다 알프스 고유의 정취가 아름답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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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 트랩 레슬리, 지금 우리는 숲으로 간다. https://brunch.co.kr/@flatb201/100
알프스 산속의 작은 마을도 칼란다 마르츠를 앞두고 어느 때보다 흥겹다. 그중에서도 소년들의 마음은 한층 더 들떠있는데 축제에서 가장 큰 종을 들겠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작지만 성실한 소년 우즐리 역시 큰 종을 받아 축제 행렬의 선두에 설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종을 나눠 받던 날, 덩치 큰 소년들에게 밀린 우즐리는 자신처럼 가장 작은 종을 받게 된다.
친구들의 놀림도 놀림이지만 축제의 들러리에 그치고 싶지 않던 우즐리는 깊은 산속 산장에 걸린 큰 종을 기억해낸다. 큰 종에 대한 소망으로 우즐리는 어두운 숲과 판자 다리도 두렵지 않다.
우즐리는 아름다운 종을 구할 수 있을까?
무단가출까지 감행하며 큰 종을 얻으려는 마음에선 허영이나 집착이 먼저 느껴질 수도 있다.
대부분의 현실에선 소망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진 않는다. 그러나 때때로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지는 우연의 기적 또한 존재한다.
현실에 쭈그러져 있는 대신 분투하는 우즐리를 지켜보면 그의 소망을 응원하게 된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단장하는 마음, 모든 의식의 첫걸음은 그런 정성에서 발현되는 법이다.
정성을 다한 끝에 누구보다 먼저 맞이하게 된 봄은 분명 그 어느 계절보다 아름다웠을 것이다.
@출처/ 우즐리의 종소리, 셀리나 쇤츠 (Schellen-Ursli, Selina Chönz, 1971, 일러스트 알로이스 카리지에 Alois Carigiet)
월간 꿈나라, 울리와 큰 종 (육영재단, 1979)
우즐리의 종소리 (비룡소, 2007, 번역 박민수, 일러스트 알로이스 카리지에 Alois Carigi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