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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Mar 29. 2016

루이스 씨에게 봄이 왔는가?,
좋은 시절


해마다 오는 계절이건만 왜 봄은 항상 한 해의 시작보다 설레는 걸까? 스리슬쩍 달콤한 대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누구든, 언제든 사랑에 빠지고 싶어 진다. 사랑이 아니라도 특별한 무엇에 대한 기대가 계절 내내 떠돈다.

여기 봄의 마법에 걸린 서툰 청년이 있다. 소심하고 예민한 신사 루이스 씨는 잊는 줄도 몰랐던 소망을 자각한다.


이정애 작가의 <루이스 씨에게 봄이 왔는가?>는 작품 자체가 봄바람 같다. 로맨틱하게 비치는 주인공의 생소한 열정에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할 때의 혼란이 덧씌워진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BBC 시대극처럼 낭만적인 배경과 쾌활한 문학적 묘사이다. 이런 묘사의 탁월함이 두드러지는 것은 노엘의 신경증 대목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페르세우스의 모험> 같은 고전부터 달리나 마그리트의 시그니처 이미지, 근대 영문학풍 판타지들이 번갈아 등장해 주인공의 강박과 열망, 불안을 버라이어티 하게 그려낸다.

문학적 상상을 통해 주인공의 강박과 심리가 유쾌하게 표현된다.
절필 선언으로 이정애 작가의 신작을 볼 수는 없지만 과거의 주요작들이 대부분 좋은 상태의 애장판으로 복간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여주인공이 담당하는 청초함과 예민함이 이정애의 작품세계에선 남자 주인공에게 투영된다.

일찍부터 BL 정서를 묘사해온 이정애는 퍼블릭 스쿨을 중심으로 미묘한 교제가 성행했던 시기를 적절히 끌어와 차용한다. 심의를 피하기 위함인지 브로맨스로 포장하고 있지만 노엘과 휴는 성애 관계만 없을 뿐 애정이 아니랄 수 없다.

노엘이 클로짓 게이라는 의견이 대세인데 감정의 방향을 모른다는 점에서 아니엘라와 노엘은 동일시된다. 외적으로는 아니엘라와 노엘의, 내적으로는 노엘과 휴의 감정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흐른다. 이런 흐름은 독자의 시점에선 미묘한 삼각관계를 구축하고 노엘에게 히로인의 역할을 덧씌운다.




그랜드 투어의 여흥이 가시기 전, 봄과 바이런의 달콤함에 취한 ‘노엘 크레이더’ 경은 문득 결혼을 결심한다. 상대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말괄량이 사촌 ‘아니엘라’.

노엘의 청혼을 장난으로 여기고 깔깔대던 아니엘라는 사뭇 진지한 그의 태도에 급작스럽게 키스한다. 노엘이 친족 이상으론 느껴지지 않는다며 아니엘라는 더없이 단호히 청혼을 거절한다. 그러나 이 예리한 경험으로 노엘은 스스로도 몰랐던 사랑의 열정에 사로잡힌다. 가문의 여주인이 아닌 운명으로서 그녀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아.. 모태솔로.. 모태솔로..


첫사랑을 경험하기도 전 이성으로 다가선 사촌 오빠에 대한 거부감과 지인들의 장난 때문에 아니엘라는 한층 더 분노한다. 냉랭한 그녀의 태도에 예민하고 소심한 노엘은 신경증에 시달린다.

악화되던 둘의 관계는 사교계의 인기인이자 노엘과 절친한 ‘휴’가 돌아오면서 호전될 듯 보인다. 작가이자 탐험가인 휴는 오지 탐험 준비 중 난감한 연애사로 피폐해진 노엘이 걱정되어 귀국했다. 서툰 연인들을 다독이는 휴는 노엘이 걱정되면서도 자신에게 의지하는 그에게 되려 안도한다.


피크닉의 날, 아니엘라의 실수로 익사할 뻔한 노엘은 남자답지 못한 자신이 수치스럽다. 무엇보다 아니엘라가 행복하길 바라는 그는 그녀의 바람대로 청혼을 철회한다. 무심히 봄날이 흘러가며 표면상으로 둘은 다정한 오누이 관계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아니엘라는 휴의 지인인 ‘랜슬리’에게 소녀다운 풋사랑의 감정을 품는다.

우연히 둘의 키스 장면을 목격하게 된 노엘은 여전히 그녀를 포기할 수 없음 깨닫는다. 용기를 그러모아 다시 아니엘라에게 애원하지만 완벽한 절연만 선고받고 절망에 빠진다.

모든 순간이 생소한 이 열정은 소심한 노엘을 매 순간 극단으로 몰고 간다.


한편 아니엘라는 랜슬리의 구애가 달갑지 않은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다.

절망에 빠진 노엘이 휴를 따라 오지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야 그녀는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는 노엘임을 깨닫는다. 이제야 비로소 어른의 사랑을 할 준비가 된 아니엘라. 씩씩한 그녀는 노엘을 찾아가 청혼한다.

한결같은 응원을 보냈던 휴는 탐험지에서 이 커플의 행복한 소식을 받아 든다.

이정애 작가는 성별 역할이 반전된 주인공을 즐겨 그렸다. 씩씩한 아니엘라.



이정애의 이 로맨틱한 작품은 설정부터 필연적으로 E. M. 포스터의 작품들이 떠오르게 한다.

1차 세계대전이 발화되기 몇 년 전 고전적 가치의 마지막 전성기였을 벨 에포크. 힘찬 시대적 에너지 아래 이성과 감성, 철학과 과학이 혼재된 시절, 제국주의의 어둠도 잉태되었지만 어느 때보다 번성한 예술과 문화 속을 한껏 차려입고 유유자적 거닐었을 신사 숙녀들.

이정애는 연애담의 형식을 빌어 이런 좋은 시절 자체를 낭만적인 연대기로 그려내고 있다.

포스터와 닮아있지만 그보다 덜 신랄하고 그보다 더 달콤하다.


하지만 포스터의 <방이 없는 전망 A Room with a View; A View without a Room, E. M Forster, 1908>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커플에게도 잔인한 후일담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가치를 끝장 낸 세계대전 이후 야만의 시간을 노엘과 아니엘라는 잘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제국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도 휴는 스스로의 자긍심을 지킬 수 있었을까?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셋의 서로에 대한 열망과 수호만은 지속되었을 것 같다. 일생이 좋은 시절일 수 없겠지만 함께여서 좋을 수 있는 일생이란 것을 깨닫고 서로를 선택한 그들이기에.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이들에게는 해피엔딩이 기다리리라 기대한다.

햇빛 가득한 정원이 아니라도 홍차를 따르며 이 연애담을 즐겨보자.

겨우내 얼어있던 낭만이 간질간질 퍼져나갈 것이다.





@출처/ 루이스 씨에게 봄이 왔는가? 이정애

월간 르네상스, 루이스 씨에게 봄이 왔는가? (서화, 1990.3-10)

루이스 씨에게 봄이 왔는가? (이미지 프레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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