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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Mar 31. 2016

사자왕과뚱보왕,
세상에서 가장 강한 색


햇빛과 바람과 공기, 당연한 것들이 사실 당연할 이유는 없다. 이 시간과 대기를 스쳐가는 우리는 모두 빌려쓰고 지나갈 뿐이다. 당연해야 할 것들이 고갈되어 빌릴 곳을 찾아 헤매는 가난한 왕이 있다. 또 다른 왕은 자신도 지나가는 이라는 걸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마이클 포먼은 사회문제나 역사에 관한 우화들을 다수 발표했다. 그의 대표작 <전쟁과 완두콩>은 <사자왕과 뚱보왕>이라는 제목의 편집분으로 처음 읽었다. 그저 선한 왕과 욕심쟁이 왕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던 이 작품이 환경에 대한 우화라는 것은 성인이 된 후 원작을 읽고 알게 되었다.

#이 달의 편집, 월간 꿈나라 https://brunch.co.kr/@flatb201/13




기나긴 가뭄으로 모든 것이 말라버린 동물 나라. 새들이 튼튼한 씨앗을 구하러 멀리 떠난 사이 남은 동물들이 땅을 골라보지만 헛된 노력이다.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구하기 위해 사자왕은 풍요로운 뚱보 나라로 도움을 요청하러 간다.


입구부터 풍요로운 뚱보나라에 사자왕은 기대감을 안고 들어선다. 아쉬울 것 없는 냉정한 뚱보왕은 사자왕의 애원을 묵살하고 가둬버린다. 간신히 탈출한 사자왕을 빌미로 뚱보왕의 군대는 동물나라를 공격한다.

굶주려있지만 용감한 동물들은 비대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뚱보 군인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던 중 씨앗을 구하러 간 새들이 비구름을 몰고 돌아온다. 검은 구름이 머금어둔 세찬 비를 내리자 새들은 탐스러운 완두콩을 뿌려댄다. 동물들이 승기를 잡아가는 가운데 비가 그치고 메말랐던 땅에는 연초록 아지랑이가 감돈다. 탱크가 땅을 헤집어 생긴 고랑에 뿌려진 완두콩들이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다.

고랑마다 물결치는 아름다운 초록빛을 바라보며 사자왕은 뚱보왕을 용서한다.




<전쟁과 완두콩>은 의도된 변형과 배치로 화면의 완급을 조절하며 작품의 주제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광택 있는 수채화를 즐겨 사용한 마이클 포먼은 극사실주의 기법처럼 정밀한 배경을 멀리서 바라보도록 배치했다. 이런 시점은 화면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이 탐스러운 케이크가 각종 바리어 혹은 기름진 폐기물 더미처럼 보이는 착시를 유도한다. 완전 군장을 하고 구조물 사이에서 바글거리는 군인들이 케이크에 낀 벌레들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캐릭터의 성격을 변주한다.

극 중 자연을 대표하는 사자왕의 이동 수단은 ‘자전거’, 인공적인 산업을 상징하는 뚱보나라의 이동 수단은 ‘탱크’이다. 양국의 상황이 환경에 따른 자원의 차이를 상징한다면 물리적인 부피감은 풍요로움을 넘어선 낭비와 독점을 가시화한다.

컬러도 직관적을 활용하는데 전투 장면에선 푸른 색감의 자연과 붉은 색감의 인공물 대비하며 부감 시점을 통해 스펙터클함을 풀어낸다. 볼링공 크기로 탱탱하게 그려진 완두콩은 색깔만큼 선명한 생명력과 의외의 파괴력을 구사한다.

독자의 시점을 지면 너머까지 확장시키는 주인공의 시선은 관용의 분위기를 내포한다.


원작의 캐릭터성 때문인지 이 작품은 덴마크 애니메이션 회사를 통해 영상화되기도 했다. 유럽 민담에 종종 등장하는 광대를 화자 삼아 이야기를 전하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Krig og Kager (https://youtu.be/k5uFJ_BHD5E)


침입자인 뚱보왕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자왕의 모습은 관용 아래 상생하는 삶을 보여준다.

활용 없이 적재된 문명은 폐기물 더미와 다름없다. 가장 위협적인 무기가 스러진 자리를 딛고 돋아나는 파란 싹들은 자연다운 무시무시함을 과시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색, 그 벌판을 바라보는 사자왕의 시점을 따라가다 보면 절로 벅찬 경외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출처/ 전쟁과 완두콩, 마이클 포먼 (War and Peas, Michael Foreman, 1974)

월간 꿈나라, 사자왕과 뚱보왕 (육영재단, 1979년 8월)

War and Peas (Transworld Pub., 2002)


Krig og Kager (Dansk Tegnefilm,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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