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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Apr 06. 2016

마녀 바바야가가 사는 나라,
예술가의 태피스트리


한 줄기 아래 흩어진 민화, 동화들은 지역색에 의해 변주된다. 로컬라이징의 묘미는 대체가 아닌 대비에 있기에 이런 변주는 비슷한 서사에도 지루하지 않다. 특히 러시아의 민담은 이야기나 화풍 모든 면에서 강렬한 지역색을 드러낸다.

이반 빌리빈은 모국 러시아의 고전적인 풍취를 화려한 일러스트로 직조했다. 러시아 미술계 마지막 구상 세대이자 골든 에이지 시대의 작가답게 우끼요에의 영향을 받은 장식적 화풍을 구사했다. 대표작 <불운한 바실리>에는 호쿠사이의 파도를 유사하게 그린 오마쥬를 선보이기도 했다.

호쿠사이의 '거대한 파도'(상)와 빌리빈의 '불운한 바실리' 속 파도(하)
우끼요에의 영향이 녹아 있는 화풍


그러나 빌리빈이 차별점을 가지는 지점은 그의 그림에 녹아있는 조형성에 있다.

이야기꾼이 전하는 일련의 챕터처럼 주요 사건은 각각의 프레임에 둘러싸여 있다. 프레임에는 사건과 연관 있는 모티브들이 섬세하게 부조되어 있다. 프레임 속 ‘주변’은 화면의 완급을 조절하며 세련된 순환을 구사한다.

러시화 민화의 시그니처와 같은 <불새>
민속적 특징이 녹아든 캐릭터들
섬세하게 반복된 패턴으로 화면의 완급을 조절한다.
역동감 넘치는 구도로 강조되는 드라마


국내 단행본 중 <마녀 바바야가가 사는 나라>는 큰 판형으로 섬세한 묘사를 충실히 살렸다. 북구의 ‘트롤’처럼 ‘마녀 바바야가’와 ‘불사신 코체이’는 러시아 민화를 대표하는 초월적 캐릭터이다. 이들은 대체로 갈등을 유발하지만 절대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리고 위협하다 조력자의 모습으로도 등장한다. 에피소드에 따라 역할을 바꿔 등장하는 연속성은 이야기에  자체에 유기적인 생명력을 부여한다.

러시아 민담 속 대표 캐릭터 '마녀 바바야가' '불사신 코체이'는 대체로 갈등을 유발하는 캐릭터이다.
제목과 더불어 머리말처럼 사용된 이미지는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는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마무리에서도 이미지를 통한 아름다운 마침표를 구사하고 있다.


러시아 여행 시 모든 것이 휩쓸고 지나간 후에도 형형한 제국의 유물들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자신의 제국 안에 유럽을 옮겨 담으려 한 짜르들의 광기가 여전히 은은했다. 거의 전 분야의 예술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화려하게 피어나 비대해진 러시아의 폭발은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이다.

러시아 예술의 흥망성쇠 속 빌리빈의 작품은 전설 속 장인들이 직조한 태피스트리를 보는 것 같다. 처음 볼 때는 화려하게만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모든 무늬를 따라 이야기 안을 헤매게 되는 내러티브의 태피스트리 말이다.





@출처/ Russian Fairy Tales

마녀 바바야가가 살고 있는 나라 (디자인하우스, 2000, 편집 세실 테루안느, 번역 윤정임, 일러스트 이반 야코브비치 빌리빈 Ivan Yakovlevich Bilibin)

Russian Fairy Tales (The Planet, 2012, 편집 A. N. 아파나시예프 Alexander Afanasyev, 일러스트 이반 야코브비치 빌리빈 Ivan Yakovlevich Bili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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