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중함이 넘쳐나는 일러스트의 세계에서 레오 리오니의 이미지들은 여전히 모던하다. 단순하고 낙관적으로만 보이던 첫인상은 정교한 꼴라쥬나 독특한 텍스쳐로 인해 지루하지 않다. 철학적 사유도 자신의 화풍처럼 심플하게 전달하는데 능숙한 작가이다.
<초록꼬리>를 처음 읽은 것은 <들쥐와 가면>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월간 꿈나라> 편집본이었다. 기존 시리즈 중에서도 중의적인 <초록꼬리>는 가면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집단 광기와 전체주의에 대한 경계를 우화 형식으로 그린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을 것이다.
조용한 시골 숲 속, 작은 들쥐들이 모여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느 봄날, 들쥐들은 지나가던 서울 쥐에게 신나는 도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서울 쥐는 잔뜩 으쓱대며 말한다.
“도시는 늘 우울하고 위험한 곳이지. 단 하루만 빼고”
“그게 언젠데?”
“마디 그라 Mardi Gras”
서울 쥐는 갖가지 분장을 하고 요란한 음악 속에 행진하는 도시의 카니발을 얘기해준다. 직접 카니발을 해보기로 한 들쥐들의 축제 준비에 숲 속은 소란스러워진다. 무시무시한 이빨과 부리부리한 눈이 달린 가면을 만들며 들쥐들은 분장에 흠뻑 취한다. 한 들쥐는 자신의 꼬리를 초록색으로 칠하기까지 한다.
달이 높아진 밤, 거대한 가면을 쓰고 으쓱대던 들쥐들은 서로에게 으르렁댄다. 작고 상냥했던 들쥐들은 가면이 주는 인상에 취해 스스로를 사납고 무서운 존재로 여기게 된다.
축제는 점차 흥겨움 대신 미움과 의심이 넘치는 밤들로 변한다.
흉흉한 날들을 지나 어느 아침, 가면도 쓰지 않았는데 코끼리만큼 큰 들쥐가 나타난다. 들쥐들은 겁에 질려 도망치지만 무거운 가면 때문에 이내 따라 잡힌다. 큰 들쥐는 자신을 무서워하는 숲 속 들쥐들에게 가면을 벗으면 모두 똑같은 들쥐일 뿐이라며 깔깔거린다.
하나둘씩 가면을 벗는 들쥐들. 자신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허상을 떨쳐내고 본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들쥐들은 서로를 반목하게 만든 가면을 태우기로 한다.
숲 속은 다시 평화로워지지만 꼬리의 초록색은 지워지지 않는다.
초록꼬리 들쥐는 자신의 꼬리를 보며 축제의 즐거움을 추억한다. 나쁜 꿈같던 무서운 가면 이야기만 빼고.
‘참회의 화요일’을 뜻하는 마디 그라 Mardi Gras는 예수가 광야에서 보낸 40일간의 고행을 기념하는 행사이다. 사순절 직전 열리는 이 축제에선 정의, 믿음, 권력을 상징하는 보라색, 녹색, 황금색 옷을 차려 입고 흥겹고 요란한 가장행렬이 이어진다.
레오 리오니는 이 축제의 상징과도 같은 가장행렬을 통해 집단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박하게 살아가던 들쥐들은 본인보다 거대한 가면을 쓴 후로 초월적 존재가 되었다는 착각에 빠진다. 즐겁고자 시작한 축제건만 가면으로 가늠할 수 없게 된 상대에 대한 두려움은 의심과 미움으로 변질된다.
가면을 쓴 들쥐들은 익명성과 전체주의에 기댄 집단 광신자들이다. 익명성은 집단지성이라는 순기능으로 발현되기도 하지만 종종 쉽게 대범해지고 쉽게 무례해진다. 이런 이들일수록 집단의 이름 아래 숨고 세를 유지하기 위한 부조리를 합리화한다.
사회적 가면 뒤에 존중받아야 할 ‘누구나’가 있음을 잊었을 때 초록색 꼬리는 즐거운 축제의 기억이 아닌 흑역사의 흔적이 될 것이다. 언젠가 축제는 끝나고 가면은 벗어야 하니까 말이다.
@출처/ 초록꼬리, 레오 리오니 (The Greentail Mouse, Leo Lionni, 1973)
월간 꿈나라, 들쥐와 가면 (육영재단, 1979년 9월, 일러스트 레오 리오니)
레오 리오니 시리즈 7권, 초록꼬리 (마루벌, 2004, 번역 이명희, 일러스트 레오 리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