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선택받은 자들의 모험은 그들이 가진 특별함만큼 흥미롭다. 그러나 매번 되풀이해보아도 질리지 않는 몽상은 결국 나 자신이 포함된 상상이다. 어젯밤 침대 밑, 오늘 지나쳐 온 풍경, 정말 일어날지도 모를 미래에 투영된 상상은 훨씬 친밀하게 느껴진다.
중앙문화사의 30권짜리 전집 <중앙문화사 소년소녀 세계수상문학전집>은 나라는 다르지만 친숙한 상상들로 가득했다. 당시로서도 비교적 현대적인 창작동화들로 구성된 이 전집은 일서 <새로운 세계의 동화 新しい世界の幼年童話, 学習研究社>를 기준으로 재편집한 전집이다. 때문에 학습연구사 전집을 원전으로 하는 동서문화사의 <메르헨 전집>과도 다수의 작품이 중복된다. 수상작을 캐치프레이즈로 하는 만큼 일부 작가의 경우 인기 판본을 선별했다. <국제 안데르센 대상 명작 전집 国際アンデルセン大賞名作全集, 講談社> 판본의 엘리너 파전, <덴네보르크 동화 전집 デンネボルク童話全集, あかね書房> 판본의 하인리히 덴네보르크의 대표작 등이 해당된다.
몇 번의 개정을 거친 국내 판본 중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실사 일러스트 표지의 1979년 판본이다. 본문에는 원전의 일러스트를 그대로 옮겼기에 독특하고 인상적인 일러스트들이 많다. 표지는 원전을 모사한 국내 작가들의 그림이 실려 본문과 화풍이 다르다. 이 전집의 1970년대 초반 판본은 노란색 표지의 하드커버였다. 모여있으면 아주 화사할 듯한 고전적인 스타일인데 무슨 이유로 바꾸었는지 모르겠다.
각 권마다 200페이지 전후임에도 지루함 없던 작품 선별이 중앙문화사 전집의 매력이었다. 특히 취향이 형성되던 연령대의 독자들이 이 전집의 면면을 좋아했다고 생각된다. 비록 유럽 쪽에 편중되어 있긴 하지만 스테디셀러 <호첸플로츠 시리즈>를 시작으로 <은빛 황새>, <사과나무 위의 할머니>, <가재 바위 등대>, <잘 가거라 호세피나> 등 풍성한 상상력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군 역시 아동문학의 대표 주자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엘리너 파전을 비롯해 앨리슨 어틀리, 제임스 서버의 소품들, 국내 인지도는 낮지만 국제적으로 인기 높은 창작동화 작가이던 우르술라 웰펠, 루이스 슬로보드킨, 미라 로베의 대표작이 수록되어 있다.
이 전집을 다시 구비하려다 전체 작품이 거의 실린 1987년 복간본을 발견했지만 무척 실망했다.
일단 책날개가 달린 소프트커버의 페이퍼백인 데다 한 권에 두 작품이 묶여 축약이 의심되었다. 그나마도 다수의 작품이 누락되었으며 결정적으로 안팎의 일러스트가 모두 교체되어 원전과는 아예 다른 모양새의 전집이었다. 교체된 일러스트와 구성이 독자적인 스타일을 이룬 <금성 칼라텔레비젼 전집> 같은 복간판과 달리 중앙문화사 전집의 1987년 판본은 재활용에 가까운 조악한 전집이다. 기억 속의 동화들을 축약으로나마 읽을 수 있다는 점 외에는 몹시 실망스러운 구성이었다. 일부 작품이 단행본으로 복간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절판본이 많아 아쉬운 전집이다.
@출처/ 중앙문화사 소년소녀 세계수상문학전집 (중앙문화사,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