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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May 24. 2016

호첸플로츠 시리즈, 모든 즐거움의 요일에!


문학과는 또 다른 범주인 아동문학의 세계에서 최고의 찬사는 무엇일까?

유익하다, 감동적이다도 좋겠지만 모든 작가가 바라 마지않는 평은 ‘재미있다’ 아닐까?

프로이슬러의 작품은 언제 읽어도 기발하고 재미있다. 무심코 펼쳐 들었어도 그의 상상력 앞에 턱을 괴고 다음 장을 넘겨나가게 된다. 고전적 캐릭터를 통한 소동극 <꼬마 유령>, <작은 마녀>, 주변의 자연을 사랑스럽게 은유한 <꼬마 물 요정>, 사뭇 심각하게 곱씹게 되는 <크라바트> 등 작품마다 동화책이 갖춰야 할 미덕을 온전히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 제일 앞 줄은 응당 <호첸플로츠 시리즈>의 몫이다.


이 스테디셀러는 인기만큼 여러 판본을 통해 되풀이되었다. 가장 좋아했던 판본은 <일곱 자루 칼 호첸플로츠>, <후춧가루 총 호첸플로츠>라는 호방한 제목의 <메르헨 전집>과 <대도둑과 꾀보 바보>, <대도둑 다시 나타나다>라는 제목의 <중앙문화사 전집>이다. 시리즈의 완결본인 3편은 비룡소 완역본이 발간되고 나서야 읽었다.

연도별 1편 표지. 중앙문화사 1974, 중앙문화사 1979, 비룡소 1998
비룡소 완역본


또렷한 개성에 작은 허술함이 더해진 캐릭터들은 주, 조연 가릴 것 없이 사랑스럽다.

후춧가루 총을 차고 다니는 희대의 도둑 호첸플로츠, 귀여운 것과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노래하는 커피 그라인더를 차지하고 싶어 안달 내고 향긋한 송이버섯을 따느라 샛길로 빠진다.

단짝 카스파알젯펠은 할머니의 간식만 있으면 콘스탄티노플의 황제도 부럽지 않은 소년들이다.

악당이지만 위대한 마법사 츠밧켈만이 집착하는 것은 감자로 만든 모든 음식인데, 어째선지 감자 껍질 벗기기 마법만은 항상 실패해 오늘도 수작업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유능한 영매 슐로터베크 부인의 우울함은 사랑하는 애견을 악어로 바꿔버린 자신의 부주의함 때문이다. 악어로 변했지만 바스티는 여전히 씩씩하고 용감한 닥스훈트다. 크르릉~!

캐릭터 각자의 개성은 꼬리를 물며 전개를 이끌거나 반전을 위한 복선으로 활용된다. 다소 평면적인 역할의 할머니딘펠모오저 경감 역시 자신의 챕터를 유쾌하고 성실하게 꾸려간다.


프란츠 요제프 트립의 일러스트는 <호첸플로츠 시리즈>의 매력을 극대화시킨다.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인 트립은 프로이슬러, 미하엘 엔데의 작품 상당수를 그렸는데 이야기만큼 매혹적인 화풍을 구사한다. 검은색 펜 하나로 쓱쓱 쉽게 그린 것 같은 그림은 뜯어볼수록 탄탄한 디테일이 녹아있다. 트립은 다양한 동적 시점을 통해 화면 속 리듬감을 만들어내는데 탁월하다.

부감, 만화적 면 분할 등을 이용한 공간감은 우리를 독일의 아름다운 마을 속에서 활보하게 한다. 페이지 넘김을 통해 캐릭터들이 등장하거나 이야기가 완결되는 연극적 연출은 자연스럽게 전개를 쫓아가도록 유도한다.

이 작품이 여러 판본으로 여러 번의 개정을 거치면서도 한결같이 트립의 그림이 채택된 이유는 명확하다. 그의 생동감 넘치는 그림이 없었다면 이 시리즈의 인기는 절반쯤 덜어내야 할 것이다.

요제프 트립의 일러스트는 인물뿐 아니라 배경마저 개성 가득하다.


시리즈 3권 내지 부분. 등장인물이 순차적으로 등장해 주인공의 후일담으로 마무리되는 직관적인 편집


이 시리즈가 충족시켜주는 오감 중 우리의 기억 속에 가장 즐겁게 남은 것은 상상 속의 미각일 것이다.

매주 일요일에 먹는 거품크림을 올린 복숭아 과자, 양배추 절임을 곁들인 두툼한 소시지, 숲에서 직접 딴 향긋한 송이버섯, 피클과 훈제 소시지로 가득한 저장고, 각각 다른 맛이 나는 색깔마저 예쁜 호박 등.. 호첸플로츠의 세계관 속에서 음식은 상당히 중요한 동기부여를 이끌어낸다.

특식으로 인해 한층 즐거워지는 ‘특별한 요일’을 카스파알과 젯펠은 손꼽아 기다린다. 이 기다림에 제멋대로 끼어든 호첸플로츠가 소년들을 개인적인 기쁨을 좌절시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프로이슬러의 교훈들은 다소 시시해 보일 정도로 작지만 또렷하다. 작품 속 최고 악당인 호첸플로츠나 츠밧켈만의 욕망은 유아적 식탐과 동일시된다. 타인을 괴롭혀 성취한 욕망은 반드시 파국을 맞는다. 물론 욕망에서 비켜난 카스파알과 젯펠에겐 보상처럼 맛있는 음식이 기다린다.

시리즈마다 독일 고유의 맛있는 음식들이 또 다른 주인공처럼 등장한다.
캐릭터마다 또렷한 개성만큼 한 스푼의 허당스러움이 더해져 사랑스럽다.


비룡소 완역분을 보면 거품크림을 올린 복숭아 과자는 원래 타르트에 가까운 자두 케이크이다. 독일 민속 음식 박물지 같은 이 시리즈 속 식탐 도는 갖가지 음식들은 또 하나의 주인공일 것이다.

동화책의 온갖 순간들 중에서 맛있는 것은 유독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런 순간들을 집요하게 발굴해낸 박물지 같은 에세이 <내 식탁 위의 책들, 정은지, 2012>에는 시리즈 속 음식들에 관한 배경이 맛깔난 디저트처럼 실려있다.


만약 오늘 하루가 힘들었다면 예쁜 딸기 케이크를 사자.

맛있는 디저트는 젯펠의 모자 없이도 모든 즐거움의 요일을 소환해 줄 것이다!





@출처/ 호첸플로츠 시리즈,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The Robber Hotzenplotz, Otfried Preussler, 1962, 일러스트 프란츠 요제프 트립 Franz Josef Tripp)

도둑 호첸플로츠와 노래하는 커피 그라인더 The Robber Hotzenplotz, The Singing Coffee Grinder

도둑 호첸플로츠와 신비한 수정 구슬 The Robber Hotzenplotz, Bizarre Crystal Ball

도둑 호첸플로츠와 위험한 습지 The Robber Hotzenplotz, Dangerous Swamp


소년소녀 세계수상문학전집 1권, 대도둑과 꾀보 바보 (중앙문화사, 1979, 번역 이영파)

소년소녀 세계수상문학전집 2권, 대도둑 다시 나타나다 (중앙문화사, 1979, 번역 구자운)


왕도둑 호첸플로츠 (비룡소, 1998, 번역 김경연)

호첸플로츠, 다시 나타나다! (비룡소, 1998, 번역 김경연)

호첸플로츠, 또다시 나타나다! (비룡소, 1998, 번역 김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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