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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Jun 02. 2016

요매변성야화,
어젯밤 지나쳐버린 꿈속에서


영화 <천녀유혼 倩女幽魂,1987>으로 유명한 <요재지이>는 중국 8대 기서 중 하나이다. 유교를 중시한 중국과 조선에선 잡문으로 폄하되었지만 작가 포송령은 당대의 걸출한 문장가였다. 그의 문장은 ‘붓끝에 신기가 어리고 글에서는 기이한 향내가 난다’고 칭송되었다 한다. 뛰어난 문장에도 요령부득했던 그는 한직으로만 내돌려졌고 <요재지이>는 이 시기에 집필된 작품이다. 포송령은 부조리한 현실 속 고매한 선비로서의 자각을 기담을 통해 풍자한다.

포송령.. 너의 글에서는 라벤더 향기가 느껴져...;; 벼슬운은 망삘 그 자체였음에도 그의 탁월한 문장은 내내 칭송받았다고 한다.


기담에 관한 만화야 너무도 많지만 불세출의 인기작 <음양사>를 빼놓을 수 없다. 일본 음양도의 슈퍼스타 세이메이와 그의 절친이자 고귀한 황자 히로마사는 헤이안 시대의 셜록과 왓슨처럼 각종 기담을 해결해 나간다.

오카노 레이코는 유메쿠라 바쿠의 매력적인 원전을 바탕으로 일본식 기담과 도교 연대기를 현란하게 교차시킨다. 우키요에처럼 우아하고 유려한 화풍은 신비로운 어둠을 더욱 고조시킨다.

<요매변성야화>는 오카노 레이코가 대륙의 기담을 소재로 그린 만화이다. 인간과 요괴가 어울려 살던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요재지이>처럼 신비하고 짧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에피소드 중 하나를 소개해보면 달빛 고고한 밤, 연꽃 속에서 정령들이 퐁퐁 피어난다.

고혹적인 자태로 불교와 도교, 유교의 도리에 대해 논하는 그녀들은 때마침 연못을 지나던 스님과 선인, 선비 (불교-도교-유교)를 발견한다. 각자의 이상형이 나타나자 매우 기뻐하던 그녀들은 그들을.. 잡아먹어버린다. 각자의 이상형은 식사 취향이었던 것.


<음양사>에 비해 <요매변성야화>는 가볍고 유쾌하다. 비슷한 구조와 서사에도 상이한 분위기의 이 두 작품은 영화 <동사서독>과 <동성서취> 페어 같은 느낌이 든다.

섬세한 선으로 촘촘히 그린 <음양사>는 유쾌함 속에서도 심연 자체를 진지하게 주시한다. <요매변성야화>는 이와 대조적이다.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기 전 연재가 중단되어선지 에피소드는 경쾌하고 짧은 수다 같다. 화풍 역시 산수화처럼 호방한 붓터치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단정한 외모의 시골 선비 이성담은 출생 시 상서로운 구름이 비치는 길조를 안고 태어났다.

열렬한 공자 덕후인 그는 당연히 귀신이나 기담 따위는 한 터럭도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이다. 그러나 너무도 쉬운 이 남자.. 귀신은 믿지 않지만 미녀는 무조건 믿는다.


과거를 보기 위해 장안으로 가던 중 묘령의 여인들을 만난 이성담. 그녀들의 유혹에 넘어가 뜨거운 밤을 보낸 곳은 알고 보니 귀신의 집이다. 심지어 그중 한 귀신은 스토커처럼 그에게 들러붙는다.


다음날 밤, 그의 앞에 운명의 정혼자라 주장하는 아름다운 선녀가 나타난다. 전날 밤 귀신 소동으로 불신이 팽배한 이성담은 ‘불어괴력난신*’을 외치며 선녀의 존재를 부인한다. (*不語怪力亂神 괴이한 일, 힘으로 하는 일, 어지러운 일, 귀신에 대한 일을 논하지 말라.. 는 공자의 현실 유교관이다.) 그녀를 요괴 취급하던 이성담은 결국.. 까이고 만다.

선녀의 조소를 통해 경직된 유교 세계관을 지적한다.


선녀에게 까여 침울한 그는 다음날 분위기에 휩쓸려 아리따운 미소년과 동침한다.

그런데 그 소년의 정체는 백여우..

이 정도면 해프닝이 아닌 그냥 수치플;;;


망충함으로 거듭 요괴들에게 희롱당하며 장안에 올라와 어찌어찌 과거에 급제한 이성담.

우아한 색기가 줄줄 흐르는 상관 용옥 장군은 이성담의 유학 실력을 칭찬한다. 이제야 공자님의 가르침을 떨칠 수 있겠노라며 이성담은 기뻐한다. 그러나 용옥 장군은 장안의 괴이한 일들을 조사해 진상보고서를 쓰라며 유교 따윈 싹 다 잊으라고 한다. 이성담은 이 수상한 부서에서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요재지이> 속에는 아름다운 인물들과의 로맨스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주로 여우나 꽃 같은 자연이 화한 이들은 인간보다 고매한 품성을 가진 것으로 설정된다. 완벽한 연인이란 여우나 꽃이 변해야만 얻을 수 있는 환상 속에나 존재함을 의미하는 걸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어젯밤 지나쳐버린 꿈이던, 우연히 만난 여우이던 불가능한 그 환상을 원한다. <요매변성야화>도 현실과 기담의 충돌을 통해 삶의 덧없는 소망을 바라본다.


일본의 기담이 원령을 중심으로 서늘한 괴담의 분위기를 풍긴다면, 중국의 기담은 어쩐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흥겨운 소동극처럼 느껴진다.

봄은 다 지나가버렸지만 꽃나무 그늘 아래에서 깜박 빠진 짧은 꿈같은 작품이다.





@출처/ 

요매변성야화, 오카노 레이코 (妖魅變成夜話, 岡野玲子, 1999)

요매변성야화 (서울문화사, 2005)


음양사, 오카노 레이코 (陰陽師, 岡野玲子, 1999-2005)

음양사 (서울문화사, 2006)


요재지이, 포송령 (聊齋志異, 蒲松齡)

요재지이 완역 전집 (민음사, 2002, 번역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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