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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May 19. 2016

월간 르네상스, 빌려보던 만화에서 소장하는 만화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스템은 변화하게 마련이다. 굳이 응답하라 시리즈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이 어느 순간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들고 다니는 전화와 커피라던가, 물을 사 먹는다던가, PC로 CD를 듣는다던가. (너무 고대적 예군여;;;) 당대에는 웃자고 했던 얘기들이 하나도 안 웃긴 일상이 된 시간은 불과 몇 년 전후이다. ‘다시보기 유료화’가 처음 시행되었을 때 모두들 보이콧할 태세였지만 현재는 어느 장르건 유료화 자체에 의문 가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지금이라고 특별히 많이 나아진 것 같진 않지만 198, 90년대 문화에 만화를 위한 자리는 거의 없었다. 19금 성인극화, 명랑만화, 트레이싱을 대고 베끼던 일본 순정물 등이 대본소를 중심으로 유통되었고 1세대 순정 작가들은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만화는 음습한 만화방-대본소에서 소비되고 잊히는 불온한 매체로 취급받았다. 주요 문화로서 시장을 구축한 일본과 달리 대한민국의 만화책이란 그저 빌려보는 것이었다. 사서 보려 해도 대본소 위주 유통에 개인 구매가 힘들었다. 이런 시장은 1990년대가 가까워지며 시스템의 변화가 감지된다.

1988년 순정만화 전문 잡지를 표방한 월간지 <월간 르네상스>가 런칭된다. 일본 순정 잡지들을 레퍼런스 삼아 일반 서점 판매로 접근성을 높인 <르네상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보물섬>, <소년 중앙>, <여학생> 등 매체의 일부로 수용되던 이전의 한정적인 지면에서 벗어나 시장의 파이를 키운 것이다.

이런 성공은 ‘저작권을 가진 작품으로서의 만화’로 가치 전도되며 유료화 정서를 자연스럽게 퍼뜨린다. 단행본 시장 또한 대본소에서 서점으로 이동되었고 웹툰이 흥하기까지 주요 시스템으로 유지되었다.

일반 일러스트 작가가 그린 창간호, 그다음호 외에는 참여 작가들이 돌아가면 표지를 그렸다.


창간 작가군의 경우 대본소 시장에서 검증된 작가들을 모아 브랜드화했다.

기존의 인기 작가 황미나와 김동화를 중심으로 데뷔작부터 걸출했던 김혜린, 꾸준한 김진, 아기자기한 로코물에서 벗어난 신일숙, 문학적 감수성의 오경아 등이 중심을 잡았다.

작품의 주제 의식도 순정 멜로 탈피가 시작된다. 비록 외피는 아직 일본 순정물의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역사, SF, 스릴러, 개인주의, 페미니즘 등 다양한 내러티브를 가진 작품들이 등장한다.

 

인기 작가들도 지속적으로 추가 갱신되었다. 작품마다 놀라운 세계관을 선보인 강경옥, 대중적이진 않아도 독보적인 이정애, 서사는 유치해도 데생은 탄탄한 원수연, 연차에 비해 대본소 시장에선 다소 미미하던 이은혜 등이 <르네상스>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들이 아닐까 한다. 조금 더 후에 등장할 걸출한 세대교체의 주인공들-유시진, 권교정, 천계영, 박희정, 한혜연 등은 이 유산을 한층 진보시킨다.

도제식으로 습득한 탄탄한 데생과 편집 능력을 보유한 이때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장르를 문화의 한 부분으로 안착시킨다. 이때의 상향화가 현재까지도 만화계를 떠받치는 자산이라 생각한다.

이은혜 역시 투명하고 고운 이미지를 구사했는데 종종 화장품을 섞어 그리기도 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판매율 고공행진에 따라 중구난방으로 창간된 아류 잡지들에 기존 작가들이 분산되었다. 공장식 찍어내기 만화를 진두지휘 하던 유령 작가 김영숙 조차 <하이센스>를 런칭했을 정도였다. 신인 발굴 등을 통해 타계책을 모색했지만 시장 파급력은 점점 떨어졌다. 또 작품에 대한 편집부의 빈번한 월권으로 인한 알력도 있었다고 한다. 안팎의 문제들로 <르네상스> 역시 폐간의 시기를 맞았고 모두의 고난 IMF 앞에 시장은 사그라든다.


<로망스>, <하이센스>, <댕기>, <화이트>, <나인> 등 무수한 장르지의 흥망성쇠에도 <르네상스>는 6년여간 발행되었다. 이 잡지의 공, 과에 대한 의견은 모두 다르겠지만 저작권 패러다임을 바꾸고 상향화 된 작품의 대중화를 이끈 점은 특히 부정할 수 없다. 

<르네상스>의 발간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애틋한 것은 첫 번째라는 프리미엄도 있다. 무엇보다 페이지 너머 전해진 당시 주축 작가들의 에너지와 열정에 열광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스템은 열정만으로 굴러갈 수도 굴러가서도 안된다. 시장의 짧았던 부흥을 수 년째 파먹고 있는 현재를 보면 그때의 작가들 중 현역으로 남은 이들이 있다는 게 거듭 놀랍다. 이들마저 사라지기 전에 체계적 구조를 갖춘 시스템이 공고해지길 바란다.





@출처/ 월간 르네상스 (서화, 1988.11-19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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