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을 찾아 나선 공주의 일탈, 어리숙하지만 선한 조력자로 인해 깨닫는 사랑의 의미.
<월간 보물섬>에 장기 연재된 <요정 핑크>는 익숙한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기본 구조는 동화의 전형성 위에 고전 외화 <아내는 요술쟁이 Bewitched, 1964-1972> 같은 다수의 변신 소녀물을 얹고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 Roman Holiday, 1953> 속 산뜻한 정서도 떠오른다.
작품의 서사는 요정이라는 소재만큼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월간 보물섬>이 아동 대상 만화잡지이기도 했지만 이 작품은 결말로 향하는 과정 자체에 집중한 소동극이다. 핑크와 빈은 로드무비 속 주인공들처럼 갖가지 사건과 사람들을 스쳐 지나간다. 하루만큼씩 스쳐가는 인생에서 이들은 하루만큼씩 성장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은 배경인 ‘서울’ 그 자체다.
엉망진창 군부 정치 아래 올림픽조차 열리기 전인 칙칙하고 촌스러운 시기의 서울 말이다. 물론 당시에도 서울 배경의 현대물은 있었지만 대부분 공간적 배경에 한정 지어졌다. 김동화는 그림 같은 먼 유럽이 아닌 우리가 스쳐 지나는 지루한 풍경 속으로 핑크를 보냈다. 모든 것이 생소한 요정의 여정 속에서 서울은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는 도시로 그려진다.
아마추어 사진작가 ‘빈’은 우연히 나뭇잎과 대화하는 사랑스러운 어린이 ‘핑크’와 마주친다. 약간은 이상한,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소녀에게 동정심이 든 빈은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해준다. (만화적 허용이라곤 해도 당시에도 다소 거북한 설정이었다. 현재라고 생각해보면 끔찍한 상상부터 든다.)
핑크는 사실 요정나라 그린우드의 공주이다. 사랑 없는 결혼이 싫었던 그녀는 ‘레인보우 왕자’의 청혼을 피해 인간 세계로 도피한 것이다. 핑크의 아버지는 ‘일곱 전사’에게 그녀를 데려오라 명한다. 다정다감한 레인보우 왕자는 핑크의 마음이 진심으로 열리길 기다릴 뿐이다. 그럼에도 인간과 요정의 세계는 엄연히 다른 차원임을 그녀에게 되새겨 준다.
핑크는 성인과 소녀 사이를 오가며 빈과 여러 가지 추억을 쌓는다. 함께 공모전 출품용 사진도 준비하고, 여행도 가고, 우연히 알게 된 여대생 연우에게 심술도 부리며 인간 세계에서의 일상과 자유를 만끽한다.
한편 핑크에 대한 진심이 깊어진 레인보우 왕자는 사랑하는 이를 이해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인간 세계로 투신한다. 본연의 능력을 잃은 그는 말라죽을 위기에 처한다. 왕자를 구할 방법은 단 하나, 무지개다리를 타고 요정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무지개다리를 만들기 위해선 핑크가 요정의 더듬이를 태워야만 한다. 그것은 자유를 잃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기에 핑크는 망설인다.
그러나 빈을 통해 알게 된 우정과 사랑, 왕자가 보여준 희생과 배려를 통해 성장한 핑크는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뒤늦게 핑크의 정체를 알고 간신히 쫓아온 빈은 작별인사를 전한다. 핑크의 도움으로 공모전에 당선된 빈은 아버지와의 화해를 결심하며 어른이 되어간다.
김동화 작가는 탐스러운 강낭콩 깍지를 보고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요정 핑크>는 연령대를 초월한 대중적인 인기로 MBC에서 설 특집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도 했다. 비교적 애니화에 적합한 작품임에도 총체적으로 난감한 작화가 또 다른 의미의 전설로 남았다.
#애니메이션 요정 핑크, 더 자세한 내용 http://blog.naver.com/lachesis_j/40156673749
레인보우 왕자는 사랑하는 이가 있어 이 낯선 도시를 아름답게 느낀다. 사랑과 우정 사이 어디쯤을 헤매고 있을지라도 빈 씨가 있기에 핑크에게도 이곳은 애틋하다.
<요정 핑크>는 비루하고 칙칙한 서울 혹은 우리의 일상 어딘가 아름다운 당신이 숨어 있노라 속삭인다.
기대치 않은 순간 떠오른 눈부신 무지개처럼.
@출처/ 요정 핑크, 김동화
월간 보물섬, 요정 핑크 (육영재단, 1984-1987)
요정 핑크 (바다그림판, 2003)
요정 핑크 (MBC,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