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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Jul 21. 2016

마담 베리의 살롱,
바로크 나라의 킹교


자의든 타의든 ‘미완작의 아이콘’을 꼽는다면 권교정 작가도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촘촘히 조율된 서사와 중독성 강한 깨알 개그로 이끌어가는 방대한 세계관은 작품마다 높은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팀플레이를 통한 이상적 공동체 구현과 페미니즘적 설정도 반복된다. 날아갈 듯 가냘프던 초기 펜선은 특유의 섬세함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권교정 작가의 작품은 몇 편 외에는 대부분 도입, 중반부쯤에 그쳐있다.


명랑하면서도 건조한 인물들이 뿜는 서늘함은 권교정 필모의 근원적 매력이다.

외형적으로 그의 인물들은 산뜻한 발랄함으로 냉정함이나 통찰력을 숨기고 있다. 때로는 무심함으로 은폐한 천재, 때로는 수세기를 살아온 은둔자의 관조처럼 말이다. 그런 이면이 갈등의 기로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는 점이 서사를 더욱 입체적이고 미스터리하게 몰아간다. 하지만 충돌이 본격적으로 발화하기도 전 작품 대부분이 미완 상태에 멈춰있기에 독자로선 막연히 유추해볼 뿐이다.


잡지 <오후>의 연재분을 묶은 미완작 <마담 베리의 살롱>은 바로크 시대를 바탕으로 한 대체 역사 판타지이다. 작가가 선호한다는 바로크 시대는 고증과 형식 골고루 차용되었다.

바로크 시대는 우연과 분방함, 과장되고 그로테스크한 외양이 주도한 시대다. 풍성한 장식과 극적인 공간은 정서상으로도 열정적으로 변주되며 동시대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바로크 양식의 야단법석스러운 과장을 무분별함으로 단정할 수 없다. 파격적인 외형은 오히려 엄격한 규칙과 조형성 아래 구현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마담 베리의 살롱> 또한 한껏 부풀린 소매와 레이스만큼 소란스러운 시기를 배경 삼는다. 그러나 종잡을 수 없어 보이는 이 세계 속에는 권교정 특유의 법칙들이 온전히 갖춰져 있다.




몰락한 귀족 집안의 둘째 ‘마일’은 유일한 친척 ‘에뚜와르 숙모’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파리로 떠난다. 그러나 숲에서 도둑을 만난 마일은 낙마로 다리가 부러진다. 나른하고 무기력한 언니 ‘에필’은 집안을 위해 동생에게 작위를 넘기고 파리로 상경해 총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에뚜와르 숙모는 모종의 종말 예언서를 조사 중이다. 정체불명의 ‘주술사’는 ‘그’의 세계만 사라진다고 말해준다.


상경한 에필은 우연히 사교계를 주도하는 ‘마담 베리’를 도와준다. 동생을 도와준 총사 지망생 ‘레인’과 ‘알렉시스’, 미모만큼 초절정 개망나니인 외무대신의 외아들 ‘새턴’, 총사대의 라이벌인 상쾌한 근위대장 ‘켈리’, 다혈질 총사대장 ‘바라’와 다정한 ‘아라미스터’ 등 주요 인물로 예상되는 이들을 차례로 만난다.

에필의 스승이자 과거 총사대 수장인 ‘라토우’는 공식적으로는 낙향한 것으로 되어있다. 에필은 라토후 덕후인 아라미스터에게 라토우의 낙향이 사실 국왕과 사이가 나빠 내쳐진 것임을 무심코 말해버린다.

한편 상념에 잠긴 라토우에게 주술사가 찾아와 그녀가 왕을 베어 예언서가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 에필의 총사대 입단 소식을 들은 라토우는 이 모든 일이 인과관계에 있음을 깨닫는다.


왕궁 무도회의 밤, 드디어 모두에게 선망받는 왕 ‘킹교’가 등장한다.

호위 중인 에필과 새턴은 예언서에 관해 밀담을 나누는 공작과 숙모를 목격한다. 어린 시절 희미한 기억 속, 숙모가 라토우를 변호하며 엄마를 공격하던 기억을 에필이 회상하며 이 책의 1권이 끝난다.

혼란스러운 건 새턴 너 만이 아니야!!



많이 알려졌지만 권교정 작가는 현재 암투병 중이다. 미완작을 비롯한 대부분의 연재가 무기한 중단상태이다. 안정적인 화풍의 연재물 <셜록>이 때마침 불어닥친 드라마 <셜록> 열풍에 탄력 받던 중이라 더욱 안타까웠다. 항암치료 중 그녀의 장기인 불특정 중세를 배경으로 판타지 소설 <더 킹, 2015>이 발간되기도 했지만 시각화 전 설정집처럼 느껴져 다소 아쉬웠다.


권교정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이 작품에도 등장하는 ‘킹교’가 어느 주인공보다도 반가울 것이다. 어떤 장르건 혼자만 독보적 명랑만화 풍인 이 절대자는 당연히 작가 자신으로 그림체처럼 뜬금없이 등장하지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예 킹교의 모습으로 쓴 작가 후기만 모아 <Gyo의 리얼 토크>라는 단행본이 발간되기도 했다.

<마담 베리의 살롱>은 바로크 나라로 떨어진 킹교의 서사로 유추된다. 킹교가 전면에 나서진 않겠지만 분명 그를 중심으로 한 소동극임은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발행분에서 조차 또렷하다.

맥거핀 같은 킹교를 둘러싼 음모의 서사는 어떤 것일까? 지금으로선 내내 아쉬워하는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후속작과 상관없이 권교정 작가가 부디 쾌유하길 바란다.





@출처/ 마담 베리의 살롱, 권교정 (시공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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