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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Aug 17. 2016

작은 물 요정,
모든 계절의 물방울


개인적인 기억이 보태져 반짝반짝 윤색된 동화를 성인이 되어 읽으면 감흥이 사그라들 때가 빈번하다. 그럼에도 좋은 동화의 미덕은 몇 세대가 지나도 유효하다.

탁월한 이야기꾼들 중 하나인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는 작품마다 사랑스럽고, 무해하며, 자연친화적인 ‘일상의 모험’을 그려왔다. 대표작 <호첸플로츠 시리즈>야 말할 것 없고 <작은 마녀 Die Kleine Hexe, 1957>, <꼬마 유령 Das Eleine Geshenst, 1966>은 우연의 소동에 휘말려 좌충우돌하지만 선물 같은 일상에 즐거워한다. 그리고 여기, 모든 것이 신기하고 하루하루가 즐거운 <꼬마 물 요정>이 있다.



워낙 인기 높던 프로이슬러의 작품은 각 전집마다 꼭꼭 선별되곤 했다. 이 작품들이 윤색된 기억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만큼 독특한 원전의 일러스트가 함께 하기 때문이다.

<꼬마 물 요정>은 중앙문화사 전집도 메르헨 전집도 원전대로 빨강과 초록의 산뜻한 보색 대비가 인상적인 표지이다. 

프로이슬러는 자연환경이 수려한 니시 강 주변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자전적 경험이 바탕이 된 이 작품의 줄거리는 매우 단촐한데 봄에 태어나 겨울잠에 들기까지 꼬마 물 요정이 겪는 첫 번째 해가 그려진다. 때문에 사건 위주의 서사보다는 물 요정의 성장에 맞춰 사계절의 흐름이 은유된다. 이런 은유는 단순한 시각적 묘사가 아닌 유쾌한 세계관을 이룬다. 일상의 풍경에 물의 유기성을 중첩시켜 동적인 사건을 만들어내거나, 겨울이 되어 물이 얼자 잠든다는 설정 등은 자연의 변화를 각인시킨다.


..“가장 빠른 송어를 보내서 잔치에 오라는 소식을 전했답니다.” 

..하하, 늪의 요정이 피리 부는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피리에서 손을 뗄 때마다 피리 구멍에서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물이 실처럼 길게 뿜어져 나왔거든요. 

..시커먼 물이 실처럼 가늘게 이어져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지요. 

..두 물요정이 진흙 더미를 지나갈 때마다 갈색 구름이 뭉글뭉글 솟아올라 물이 뿌옇게 흐려졌지요.


..마침내 물레방아가 아주 빠르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지요.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꼬마 물 요정은 머리를 높이 들고 용수로에 뛰어들었습니다. 훌쩍 몸이 미끄러졌고 화살처럼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물레방앗간이 금세 다가왔고, 그다음에는 물속으로 퐁당! 하고 빠졌지요.


..꼬마 물 요정의 손 끝이 물에 닿자마자 은빛 달이 출렁거리며 움직였습니다.

“이제 달을 잡았니?” 아빠 물 요정이 물었습니다.


..“정말로 해님이 우리를 깨울까요?”..“봄이 올 때까지 잘 자거라!”

“잘 자라, 꼬마 물 요정아!”..꼬마 물 요정은 그제야 엄마 물 요정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엄마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들을 수 있어서 기뻤답니다.



위니 게일러는 <호첸플로츠 시리즈>의 프란츠 트립과 더불어 프로이슬러의 대표작을 다수 그렸다.

트립이 동적인 구도를 통해 그래픽한 배리에이션을 시도했다면 게일러는 캐릭터에 집중된 섬세함을 보여준다. 트립처럼 쓱쓱 그려낸 듯한 게일러의 펜화는 유연하면서도 탄탄한 데생 아래 아기자기하다.

갈대로 벽을 엮은 하얀 모래가 깔린 저수지 바닥의 집, 구운 물고기 알, 하늘거리는 초록색 수초 커튼, 춤추는 여러 지역의 물 등 프로이슬러가 만들어낸 세계는 게일러의 섬세함으로 현실성을 얻는다.


무엇보다 이 세계관의 풍경을 완성시키는 것은 꼬마 물 요정의 ‘관계 맺기’이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구운 돌(감자)을 계기로 꼬마 물 요정은 마을 아이들과 친해진다. 맛있는 간식을 나눠주는 인간 친구들이 고마웠던 물 요정은 예쁜 조개껍데기와 반짝이는 돌을 모아 선물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개구리 알 보다 인간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에 마음 쓰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그들에겐 각자의 다름에 대한 부정이 아닌 인정과 공유가 존재한다. 지나온 계절은 함께 한 좋은 이들이 있어 추억의 무게를 더한다.


프로이슬러의 꼬마 물 요정은 다른 동화 속 요정들처럼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줄 능력 같은 것은 없다.

개구진 표정이 뚝뚝 묻어나는 이 작은 요정은 주변의 어린이와 다르지 않다. 이 요정의 하루하루는 평온히 가라앉아 있다 즐거움으로 출렁거리는 일상의 마법을 자각시킨다.

한창인 여름, 경쾌하게 흩어지는 물줄기를 볼 때면 호기심 많은 물 요정의 깔깔거림이 떠오르곤 한다.





@출처/ 

작은 물 요정,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Der Kleine Wassermann, Otfried Preussler, 1956)

新しい世界の童話シリーズ 13, 小さい 水の精 (学習研究社, 1967, 번역 오오츠카 유조 大塚勇三, 일러스트 위니 게르하르트 가일러 Winnie Gebhardt Gayler)

소년소녀 세계수상문학전집 29, 작은 물 요정 (중앙문화사, 1979, 번역 김병태, 일러스트 위니 게르하르트 게일러 Winnie Gebhardt Gayler)

메르헨 전집 20, 꼬마 물 요정 (동서문화사, 1982, 번역 정동화, 일러스트 위니 게르하르트 게일러 Winnie Gebhardt Gayler)

꼬마 물 요정 (비룡소, 2002, 일러스트 위니 게르하르트 게일러 Winnie Gebhardt Gay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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