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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Aug 24. 2016

강아지 이달고, 너는 행복


개에 관해 간직된 이야기들은 대부분 유쾌하고 애틋하다.

우리가 서로 낯선 이들이라 해도 ‘천국이 어디건 개가 없는 곳은 천국이 아니다’라는 말에 공감의 하트를 누르며 ‘인생의 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눌 수 있다. 

(역시 좋은 사람들이지만 개를 좋아하지는 않는 사람들은 잠시 잊도록 하자.)


프랑스 작가 르네 기요는 오랫동안 아프리카에서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사자, 코끼리, 곰 등 주로 맹수에 관한 이야기를 써 성공한다. 에이브 전집에 실린 <밀림의 북소리 Prince of the Jungle, 1956> 등이 대표적이다. 말년의 그는 이국적 맹수가 아닌 ‘작은 개’ 이야기를 발표하는데 국내에는 <강아지 이달고>로 알려진 <Petit Chien> 시리즈이다.

르네 기요는 인생의 기본 명제 같은 가치들에 약간의 환상을 섞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우연히 미아가 된 작은 개는 여러 이름과 사건을 거치며 종을 넘어선 선의와 우정, 모성애를 경험한다. 작은 개의 모험은 미스터리 같은 다층 구조를 통해 박진감을 얻는다. 변사 역할을 부여받은 숲 속 통신원들은 친밀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강아지 이달고>를 읽은 것은 계몽사의 노란 책 전집을 통해서였다. 원전 중 <작은 개와 그의 친구 Un Petit Chien et Ses Copains, 1965>, <작은 개의 크리스마스 Le Noël d'un Petit Chien, 1965>, <강아지의 짧은 역사 Petite Histoire d'un Chien, 1966>를 묶어 수록한 것이다. 일서 원전인 <현대세계명작동화 現代世界名作童話, 講談社, 1969>에선 각각 개별권으로 발행되었다.

시리즈마다 모두 따뜻하고 재미있지만 아쉽게도 계몽사 전집 이후 이 작품의 국내 번역본은 보지 못했다.

#계몽사의 노란 책 https://brunch.co.kr/@flatb201/76

#작은 개의 크리스마스 https://brunch.co.kr/@flatb201/113

  쟈끄 푸아리에가 그린 유쾌한 화풍의 초판 커버들. 시리즈를 거듭하며 작은 개는 달까지 간 듯;;


계몽사 전집의 일러스트는 당시 인기 삽화가인 송영방이 맡고 있다. 일서 원전의 모사작이긴 해도 단순화된 이목구비와 크로키 같은 라인으로 풍부한 정서를 구현해 내는 그의 특기가 녹아 있다. 쟈끄 푸아리에의 원화가 리버럴 한 1960년대의 분위기를, 나카타니 치요코가 동화적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면 송영방의 일러스트는 두 작가에 비해 함축적인 서정성을 자아낸다.

코단샤 1969, 일러스트 나카타니 치요코(좌) / 계몽사 1970, 일러스트 송영방(우)





코로코로

꼬마 닥스훈트 ‘코로코로’의 엄마는 여우이다. 살쾡이에게 어린 새끼들을 모두 잃고 슬픔에 빠진 여우는 길 잃은 강아지를 키운다. 엄마 여우의 정성으로 강아지는 숲 속 생활에 익숙해진다.

작은 개는 자신이 원래 개였다는 자각 없이 엄마 여우처럼 훌륭한 숲의 후계자가 되리라 다짐한다.

짧은 다리와 긴 허리로 종종거리며 걸어도 엄마 여우에겐 코로코로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다. 그러나 외모만큼 본능은 숨길 수 없는 것인지.. 코로코로는 사냥감을 엄마 여우 앞으로 몰기만 할 뿐 직접 사냥하지 않는다. 험한 숲에서 그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엄마 여우는 몹시 걱정된다.


어느 날 혼자 사냥에 나서게 된 코로코로는 포악한 살쾡이와 마주친다. 여차하면 자신이 나서려 몰래 숨어 지켜보던 엄마 여우는 코로코로가 용감히 싸워 승리하는 것을 목격한다.

절뚝거리며 멀어져 가는 코로코로. 엄마 여우는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서글픈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다.

코로코로. 새끼를 잃은 엄마 여우는 미아가 된 작은 개를 보살핀다.


이달고

사라진 엄마 여우를 찾아 겨울 숲을 헤매던 코로코로는 추위에 잠들고 만다. 얼어가고 있던 그를 발견한 인근 농장주는 코로코로를 자신의 손녀 파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다.

상냥하고 작은 파니는 ‘이달고’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다.

가끔 닭장을 볼 때면 여우 엄마와 함께 한 병아리 사냥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작은 개는 점점 인간들과의 생활에 익숙해진다. 그런데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지내던 이달고가 어느 날 사라진다.

며칠 후, 농장주는 숲지기의 목격담에 의해 이달고가 숲에서 키워졌으며 여우와 어울리는 것을 알게 된다. 파니는 이달고가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도록 마당 한구석을 열어두기로 한다.

이달고. 다정하고 선한 파니는 작은 개의 삶의 방식을 수용한다.


도미노

여느 때처럼 즐겁게 숲으로 향한 작은 개는 덫에 걸려 신음하는 엄마 여우를 발견한다.

인간이 익숙해진 작은 개는 지나가던 사냥꾼과 소년 파트리끄를 엄마 여우 앞으로 유인한다. 안절부절못하며 곁을 떠나지 않는 개가 여우와 보통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한 그들은 둘을 함께 데려간다. 마침 파트리크의 아버지는 존경받는 수의사였고 엄마 여우를 치료해준다.

파트리끄는 작은 개에게 ‘도미노’라는 새로운 이름이 쓰인 목걸이를 걸어주고 귀여워한다.

엄마 여우의 상처가 아물자 작은 개는 함께 사라진다.

도미노. 인간과 익숙해진 작은 개는 엄마 여우가 그랬듯 최선을 다해 엄마 여우를 보살핀다.


모두의 강아지

평소보다 오래도록 이달고가 돌아오지 않자 파니는 걱정에 휩싸인다. 엄마 여우만큼 파니를 좋아하게 된 작은 개는 그녀를 찾아간다. 목걸이로 인해 파니는 파트리끄와 마주치게 되고 두 사람은 그간 작은 개의 행적을 추측해 본다. 작은 개로 인해 둘은 친구가 된다.

숲에서는 엄마 여우가 사라진다. 티티새 소식통에 의하면 엄마 여우는 요즘 작은 개와 함께 파니네 헛간에서 지낸다. 작은 개를 위한 파니의 배려이다. 믿을 수 없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모두가 사실이다.





르네 기요의 작은 개는 <클럼버 강아지 The Little Bookroom ; Clumber Spaniel, Eleanor Farjeon, 1955>가 연상된다. 클럼버 강아지처럼 작은 개도 해피엔딩을 향한 화살표 같은 역할을 한다.

작은 개는 시기별로 만나는 이들에게 이름을 얻으며 존재감을 부여받는다. 그 존재감은 이름을 부여해준 이가 발견한 행복의 형태이다.

자식을 잃은 어미 여우에겐 위로로, 파니에겐 다정한 동생으로, 파트리끄에겐 신나는 친구로 말이다. 조용히 퍼져나가 물드는 행복처럼 이달고는 모험을 통해 관계를 확장하고 성장한다.

‘이달고’ ‘도미노’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모두들 자신이 좋아하는 명칭으로 바꾼 것일 뿐 아마도 너의 진짜 이름은 ‘행복’일테니까.





@출처/ 

강아지 이달고, 르네 기요 (Un Petit Chien ; Little Dog Lost, René Guillot, 1970, 일러스트 쟈끄 푸아리에 Jacques Poirier)

現代世界名作童話 7, 小さないぬの小さな物語  (講談社, 1969, 번역 키무라 쇼자부로 木村庄三郎, 일러스트 나카타니 치요코 中谷千代子)

現代世界名作童話 8, 小さないぬのクリスマス  (講談社, 1969, 번역 키무라 쇼자부로 木村庄三郎, 일러스트 나카타니 치요코 中谷千代子)

現代世界名作童話 9, 小さないぬとなかまたち  (講談社, 1969, 번역 키무라 쇼자부로 木村庄三郎, 일러스트 나카타니 치요코 中谷千代子)

소년소녀 현대세계 명작전집 6권, 강아지 이달고 (계몽사, 1972, 번역 권영자, 일러스트 송영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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