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소리 내어 발음해보는 것만으로 즐거워지는 단어 중 하나이다.
흰 눈, 울려 퍼지는 캐럴, 온갖 디저트와 꼭대기의 별, 미슬토 아래에 오고 가는 키스들은 절대 지겹지 않다.
소망과 기대를 접어 넣은 선물 상자들 앞에선 언제나 두근거린다.
르네 기요의 <작은 개 시리즈 Petit Chien> 중 한 편인 <이달고의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 강아지 이달고의 꿈같은 모험을 그리고 있다. 한때는 누군가의 열렬한 소망이었을 장난감들은 시간의 두께 속에 부서지거나 퇴색해간다. 크리스마스는 지친 그들에게 작은 기적을 선물한다. 호기심 많은 작은 개 이달고는 내내 종종거리며 선물 같은 하룻밤을 지켜본다.
르네 기요는 시리즈의 전작처럼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서사를 진행한다. 감칠맛 나는 문장들은 아름다운 밤의 정경이나 작은 개의 흥분에 몰입하게 한다.
#강아지 이달고, 작은 개의 이름에 관한 이야기 https://brunch.co.kr/@flatb201/82
모두가 잠든 크리스마스이브, 강아지 ‘이달고’는 짧은 다리를 쫑쫑거리며 방 한구석 소곤거림을 따라간다. ‘파니’의 인형들이 속삭이고 있다. 이 집에 온 지 일 년이 채 안된 ‘마리에트’에게 ‘로진’과 곰인형 ‘바부’가 장난감들의 파티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이다.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의 밤, 장난감들은 멀고 먼 곳에서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축하 파티를 연다.
“로진, 이달고가 우리와 같이 가고 싶어 하는데.”
“바부, 너 정신 나갔니? 장난감이 아니잖아. 자, 어서 가자. 그 먼 곳까지 이달고를 데리고 갈 수는 없단 말이야.”
그곳, 그 먼 곳, 이 말에는 언제나 신비스러움이 가득한 법입니다. 이달고는 점점 호기심이 솟기 시작하였습니다.
단호하게 굴었지만 로진은 따라오는 이달고를 굳이 말리진 않는다. 장난감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집을 나선다. 부서지는 달빛 아래 눈으로 뒤덮인 숲 속은 너무도 아름답다. 곰인형 바부는 빌로오드로 만들어져 추위를 타지 않는다. 그러나 다리 하나가 없는 데다 가루 같은 눈이 몸에 묻자 점점 뒤처진다.
“바부, 어서 따라와. 어서!”
뒤를 돌아본 로진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너는 다리 셋만 가지고 걷는 일이 쉽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파티에 늦을까 인형들이 조바심을 내자 이달고는 자신의 등에 바부를 태운다.
파티장에 가까워질수록 각지에서 모인 많은 장난감들이 더욱 눈에 띈다. 마치 카니발 행렬 같다. 각양각색의 인형들이 예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때는 화려했을 색깔이 물고기 비늘처럼 벗겨진 어릿광대, 다리가 없어 바퀴 달린 말 인형을 타고 온 원숭이 인형.. 딱 보아도 오래되고 부서진 인형들뿐이지만 표정만은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하다.
일 년 만에 만나는 인형들은 서로 얼싸안고 안부를 나눈다. 로진의 친구 ‘롤리타’는 원래 파니의 인형이었다. 그런데 작년 여름 손님으로 온 먼 지방에 사는 ‘클로딘’이 그녀에게 반해버린다. 가난한 클로딘이 롤리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자 마음 착한 파니는 롤리타를 선물했었다.
강아지 인형인척 하며 따라온 이달고는 톡톡히 제 몫을 한다. 다리가 불편한 바부를 태워 다니고 난생처음의 축제에 흥분하다 길을 잃은 마리에트를 찾아오기도 한다. 이달고는 마침내 장난감들과 함께 파티가 열리는 낯선 동굴에 도착한다. 자정을 알리는 종이 치자 마술의 궁전에 늙은 마법사의 모습을 한 장난감들의 임금님이 나타난다.
.. 이달고의 조그만 가슴은 방망이질하듯 두근거렸습니다. 다크스훈트 개는 여간해서 겁을 내지 않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보통 동굴이 아니었습니다.
“.. 여러분은 임금님의 귀여운 자녀들입니다. 특히 여러분 가운데 가장 불행한 분을 임금님은 가장 사랑하십니다.”
숨죽여 파티를 구경하던 이달고는 보안대장에게 들켜 잡혀간다. 이달고처럼 장난감들과 친해 몰래 들어온 동물들을 골라내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잡혀간 방에서 빠져나와 헤매던 이달고는 파티의 비밀을 알게 된다. 각 방마다 간호사처럼 흰 옷을 입은 예쁜 소녀들이 망가지고 낡은 인형들을 고쳐주고 있었다. 꼼꼼히 수선하고 새롭게 단장한 장난감들은 익숙하면서도 산뜻하다.
로진과 마리에타는 꼼꼼한 단장으로 더 예뻐졌고 바부 역시 새로운 다리가 생겼다. 이달고와 인형들은 무사히 귀가하고 크리스마스의 아침이 밝는다.
로진은 파니가 예쁘고 새로운 인형을 선물 받자 울적해진다. 그러나 다정한 파니는 산뜻해진 인형들을 한껏 칭찬하며 골고루 예뻐해 준다.
이달고는 꿈같은 어젯밤 모험을 떠올리며 연신 하품을 해댄다.
숲 속의 동물들은 이달고의 모험담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흰 고양이 ‘파리네트’가 나른하게 덧붙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만일 이달고가 꿈을 꾼 것이라면 참으로 예쁜 꿈이었다고 말하고 싶어.”
작은 개 시리즈 중 <이달고의 크리스마스>는 특히 사랑스럽다. 귀여운 서사에 담긴 다정함 때문일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아님에도 파니는 누군가의 간절함을 알게 된 순간 서슴없이 자신의 소중한 장난감을 선물한다. 바부와 로진은 이달고의 호기심을 이해해준다. 늙은 마법사는 부서지고 잊혀진 장난감들을 수선하고 위로한다. 이 모든 선물의 수혜자인 파니는 새로운 인형으로 인해 불안해하는 낡은 인형에게 키스해준다.
장난감들이 한껏 단장에 힘쓴 것은 자기 만족도 있겠지만 결국 소중한 이에게 간절함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이다. ‘가장 불행한 자를 가장 사랑한다’는 크리스마스 정신은 모두의 해피엔딩으로 귀결된다.
떨어져 있던 이들이 모이는 때임에도 차갑고 깊은 물속에 잠긴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들,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 불빛처럼 덧없어질까 조바심 내게 되는 촛불들. 어이없는 시국은 당연했던 일상의 즐거움에 양가감정이 들게 하지만 올해도 크리스마스는 다가온다.
다시 돌아온대도 똑같지는 않을 소중한 겨울을 한껏 즐기자. 그 행복함을 지금 ‘가장 외로울 이들’과 나누고 북돋아 주자. 차가운 거리를 뜨겁게 덮은 불빛들이 평범하지만 절절한 소망을 이루어주길, 간절함이 담긴 각자의 선물상자가 제대로 도착하길 바라며 이 계절을 지난다.
@출처/
이달고의 크리스마스, 르네 기요 (Le Noël d'un petit chien, René Guillot, 1965, 일러스트 쟈끄 푸아리에 Jacques Poirier)
現代世界名作童話 8, 小さないぬのクリスマス (講談社, 1969, 번역 키무라 쇼자부로 木村庄三郎, 일러스트 나카타니 치요코 中谷千代子)
소년소녀 현대 세계 명작전집 6권, 강아지 이달고 (계몽사, 1972, 번역 권영자, 일러스트 송영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