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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Sep 22. 2016

녹색의 문, 닿을 수 없는 곳


어린 시절 보게 된 ‘연령대를 빗나간 작품’은 이해가 아닌 인상으로 각인된다.

내 경우 TV 드라마였던 <숲에는 그대 향기, KBS, 1982>와 엄청난 인기로 국내에서도 방영된 <게임의 여왕 Master of the Game, CBS, 1984>이 그런 작품이었다. 두 작품 모두 시청 연령대에 훨씬 못 미치는 나이에 봤는데 자세한 플롯은 잊었어도 작품이 가지고 있던 분위기만큼은 내내 또렷했다.

성인이 된 후 찾아본 <숲에는 그대 향기, 강신재, 1970>가 TV 드라마와는 편차가 있던 반면 <게임의 여왕 Master of the Game, Sidney Sheldon, 1984>은 이어보기 하듯 인상에 딱 부합하는 작품이었다. 시드니 셸던은 막장드라마로 치부하기에는 쫀쫀하게 조율된 통속물을 발표해왔다. 문학적 평가와 별개로 그의 작품 대부분이 베스트셀러 및 영상화되었다.

Master of the Game, CBS, 1984


<게임의 여왕>을 비교적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전혜경 작가의 <화려한 게임> 때문이다. 이 미드의 인기에 힘입은 것인지 작가 개인의 감흥인지 모르겠지만 드라마만큼 탄탄하게 재구성한 순정물이었다.

1980년대 중, 후반 활발하게 활동한 전혜경 작가는 완숙한 데생과 탄탄한 서사를 갖춘 작가이다. 특히 통속 서사를 즐겨 구사한 그녀의 대표작 <환상의 성>, <녹색의 문> 등은 출생의 비밀, 자수성가로 귀결되는 클리셰로 가득하다.

신데렐라 서사를 기반으로 하지만 전혜경의 주인공은 언제나 분투한다. 원작에 빚졌다 해도 그녀의 여주인공들은 지고지순한 히로인이 아닌 목표를 위해 무자비함도 불사하는 능동적인 여성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이런 번개를 ..라고 부른단다.” 라며 서늘하게 걸어가던 <화려한 게임>의 엔딩이 주는 스펙터클함은 그런 여주인공들로 인한 것이다. (대사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흑흑)


꽤 활발한 작품 활동과 인기를 유지했음에도 전혜경의 계보는 조금 애매하다. 1990년대 들어 순정만화가 짧은 부흥기를 맞기 훨씬 이전 작품 활동을 접었기 때문이다. 권숙, 김진 작가의 초기 화풍에서 전혜경의 분위기가 종종 느껴진다. 그녀의 작품 중 <바람 빛깔의 노래>는 김진 작가가 스토리를 썼다고 한다. 이때의 협업에서 김진의 화풍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아닐까 추측해 볼 뿐이다

순서대로 전혜경, 김진, 권숙의 작품 (이미지 출처: 만화규장각)


대표작 중 인상 깊은 것은 아무래도 <화려한 게임>으로 초판의 표지가 무척 아름답다.

특히 진주 목걸이를 한 주인공이 도발적인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4권의 표지는 당시로선 무척 신선했다. 대본소 시절의 단행본은 주로 주인공의 얼굴이나 전신이 ‘온전히 그려진’ 앞면과 진한 다홍색의 뒷면이 일반적이었다. 때문에 초상화 스타일에서 벗어나 과감한 트리밍을 선보인 표지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화려한 게임, 1984년 초판 (이미지 출처: 만화규장각)


<녹색의 문> 역시 TV 드라마 <카인과 아벨 Kane and Abel, Jeffrey Archer, 1985>을 순정물로 재구성 한 작품이다. 전혜경은 전작 <화려한 게임>에 비해 더 적극적인 재구성을 시도한다.

우선 주인공의 성별을 여성으로 교체하고 남자 주인공은 조력자로 바꾸었다. 주인공이 자수성가하기까지 우연의 남발과 조력자가 너무 많지만 <녹색의 문> 주인공 역시 스스로의 선택 속으로 망설임 없이 걸어간다. 고난의 시기가 지나면 해피엔딩이 예정된 히로인이 아닌 과오를 범하고 후회도 하는 인물의 입체감에는 ‘어른의 멜로’가 녹아 있다.

녹색의 문, 1985년 초판 (이미지 출처: 만화규장각)

전혜경의 초기작들은 일본 순정 화풍을 모사한 수준이었지만 점점 유려한 펜터치의 데생과 성숙한 서사를 선보인다. <화려한 게임>을 소개하고 싶었지만 초판을 구하는 게 무척 어려웠고 복간된 <녹색의 문>은 표지가 한 종류로 통일되어 아쉬울 따름이다.





1906년 폴란드, 한 농부가 죽은 여인의 곁에서 아기를 발견한다. 보랏빛 눈동자의 아기는 의붓어머니의 아낌없는 사랑 아래 ‘플로렌티나’라는 이름으로 자라난다. 총명한 플로렌티나는 로마노프스키 남작의 외아들 ‘레온’의 공부상대로 입성한다. 계급 차이가 주는 괴리감에 주눅 들었던 그녀는 남작과 레온의 자상함 속에 아름답게 성장해간다.

교육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눈 떠가던 중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침략군에게 대항하던 레온은 사살당하고 남작은 성안의 가솔들과 지하에 감금된다. 우연한 계기로 남작은 플로렌티나가 죽은 연인 사피아의 딸임을 알게 된다. 그는 정신을 그러모아 그녀를 교육시키고 가문의 후계자로 지목한 뒤 사망한다.


수용소에 끌려간 플로렌티나는 의붓형제들의 도움으로 탈출해 여러 사람의 도움을 거치며 미국으로 향한다. 잃어버린 가문을 복원하기 위해 악착같은 플로렌티나는 뉴욕에서 자리 잡아가기 시작하지만 정서는 삭막해져만 간다. 힘든 시절부터 곁을 지킨 ‘조지’는 변해가는 그녀에게 충고해주는 유일한 친구이다. 조지가 시한부 투병 중임을 알게 된 플로렌티나는 새삼 자신을 돌아본다. 내일이 없는 짧은 사랑이지만 플로렌티나는 조지와 약혼한다.

조지의 사망 후 플로렌티나는 더욱 무자비해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그녀의 사업은 은행장  ‘케이’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플로렌티나의 악명이 높아가는 가운데 케이는 그녀의 공허함을 목격한다. 연민으로 주저하던 케이는 결국 플로렌티나의 선공에 모든 것을 잃는다. 깨끗이 패배를 인정한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한다. 플로렌티나는 뒤늦게 자신의 성공이 케이의 숨은 지원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게 된다. 라이벌이자 정신적 동료로 의지해온 그에게 사과하고자 기다리지만 케이는 공습 중에 실종된다.


종전 후 플로렌티나는 모든 것이 폐허가 된 고향 폴란드의 성을 방문한다. 옛 고향집에서 미치광이가 된 의붓어머니를 발견하자 플로렌티나는 회한에 잠긴다.

자신이 집착해온 행복이 무엇이었는지 자문하며 그녀는 쓸쓸히 돌아선다.





극 중 ‘녹색의 문’은 행복으로 들어서는 입구를 의미한다.

어느 사나이가 현자가 말한 녹색의 문을 찾아 나섰다 실패해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수 십 년간 자신을 기다려온 어머니가 달려 나오는 모습을 보며 그는 깨닫는다. 햇살에 반짝이는 녹색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고향집 문이 녹색의 문이었음을.

전쟁 통에 모든 가족이 사살당하고 미치광이가 된 의붓어머니-그녀에겐 플로렌티나가 준 돈을 땔감으로 태워 만들어낸 작은 불씨가 지금의 행복인 것처럼.


사랑했지만 떠나간 사람들, 오해로 놓쳐버린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자신.

행복의 복원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하고 질주했던 플로렌티나는 행복은 복원되는 것이 아닌 발견되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모두에 의해 살아 남겨진 그녀는 다시 길을 나설 수밖에 없다.

어딘가에 있을 행복의 입구, 자신만의 녹색의 문을 찾아.

자신에게 허락된 유일한 행복이 닿을 수 없는 곳을 꿈꾸는 시간뿐이라 할지라도.





@출처/

녹색의 문, 전혜경

녹색의 문 (대화,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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