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다른 곳의 <믹스드 백>에 올라갔던 글이며 브런치 독자분들을 위해 새롭게 다듬었습니다.
파트너와 서태지 님의 노래를 들었던 날입니다.
서태지 님이 음악을 만들어온 궤적을 보면 항상 마음이 뜨겁고
이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점이 무척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됩니다.
파트너에게 좋아하는 곡들 몇 가지를 소개하면서 마지막 축제라는 곡을 듣게 되었는데
저는 이 노래를 처음 알았던 순간부터 오락실에 있던 버블보블을 떠올렸었죠.
도입의 음 몇 개가 완전히 일치합니다.
표절일까?
이것을 샘플링이라고 하고 제가 좋아하는 오자와 켄지 역시 '안녕이라는 말은 하지 않아.'에서 마이클 잭슨의 black or white의 상쾌한 기타 부분을 넣어 샘플링했으나 (두 곡을 모두 아는 사람이면 그게 샘플링인지 알 수 있다 바꿀 것도 없이 음 몇 개가 똑같습니다.) 저는 이게 아무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원곡이나 샘플링된 곡 모두 좋아합니다.
원곡을 좋아했고, 영향받았기에 '안녕이라는 말은 하지 않아.'에서 샘플링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음껏 'black or white'가 좋다, 영향과 영감을 받았다! 고 외친다고 느꼈습니다. 오자와 켄지는 작사, 작곡, 노래를 전부 하는 뛰어난 크리에이터인데 이런 사람이라면 당연히 앞서 만들어졌던 온갖 좋은 곡들을 알고 누리면서 흡수했을 것이 뻔합니다.
음악이 아닌 다른 창작에서는 오마쥬라고 말할 수 있는 행위인 것이죠.
표절은 완전히 같은 것을 만들고 싶은 욕구
이후에는 단순히 오마쥬(샘플링)가 아닌 '완전히 같은 것을 만들고 싶은 욕구'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창작자가 앞서 만들어져 왔던 작품들의 영향을 받고, 멋진 작품일 경우 그것과 완전히 같은 것을 내가 만들고 싶은 욕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퇴마록에서 등장인물의 구성(성별, 나이 등)을 똑같이 하고 능력을 약간 바꾸었으며 사건의 내용은 직접 만들었지만 어쨌든 멤버가 각종 귀신이 등장하는 수상하고 무서운 사건을 마주치고 해결해나가는 퇴마록의 아류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을 쓴 적이 있으며 이걸 읽은 친구는 '퇴마록과 똑같다'라고 말하며 웃어버렸죠.
당시에 전 제가 추가한 '다른 점(차이)'이 있었기에 (그러나 이 서툴고 자잘한 디테일을 걷어낸다면 퇴마록과 원형이 완전히 같습니다.) 그걸 인정할 수 없었지만 부끄러웠고, 그래서 더는 쓰지 않았습니다.
작품의 영향을 받는 것, 영감을 받아 이야기를 만드는 것, 다른 작품과 유사하게 만드는 것...
모두 어느 업계에서나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니 모든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진짜 작가'라고 할 수 없는데 이는 단지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의 창작물은 그것이 어느 플랫폼(회사)과 연결되어 있는가, 플랫폼(회사)의 방침이 어떠한가, 그 플랫폼(회사)이 어떤 독자들을 보유하고 있는가등등... 즉 플랫폼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얼핏 보면 독자의 입맛을 따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편으론 또 지금처럼 많은 독자들을 사로 잡기 쉬운 환경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독자들이원본 A에서 그저 좋아보이기 때문에 훔쳐간 표절작 B작품을 즐겨 볼까요?
과연 B작품의 생명력은 언제까지일까요?
답은 아니다, 그리고 순간적이다, 입니다.
과거에도 많은 작가들이 표절에 시달렸고 유사작이 쏟아졌지만, 살아 남은 건 원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앞으로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만들 줄 알고, 기꺼이 스스로가 좋아하는 작품의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고 인정(오마쥬)하는 작가들만이 남을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멋진 작품의 영향을 받고, 그것을 인정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책임(더하여 자신의 독자들에 대한)을 진다고 볼 수 있는 행위입니다.
파트너의 의견을 인용하면 문제는 이러한 책임을 지려하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바로 독자들에게 질적으로 좋은 작품을 선보이지 못하고, 가치가 하향된 작품들을 공급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가로서도 부끄럽고, 독자들도 피해를 보며 실례인 일이죠. 그때그때 돈만 벌면 된다, 창작하는데 표절과 오마쥬가 대체 뭐가 다르냐, 하는 말들은 앞으로의 지구 생태계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 오늘 나는 마음껏 일회용품을 쓰겠다...라는 행동과 같은 것입니다. 당장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윤리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저 역시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리는 창작자로서 이 글을 올리고 오늘 다시 한번 표절과 오마쥬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