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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twhite Oct 30. 2022

너의 이름은 상아유

You heal me

우붓에서 공항 근처 도시인 꾸따로 이동하기 전날 밤, 해충 스프레이를 사다 준 호텔 직원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어졌다. 바퀴벌레가 나온 날 밤, 해충 스프레이가 떨어져 불안해하며 다시 방으로 돌아온 나를 위해 직원은 해충 스프레이를 새로 사다 주었다. 그날 밤 팁을 줬어야 하는데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마실 때 생각이 났다. 그 직원은 작은 키에 마른 인도네시안 여자였다. 이름도 모르는 그 직원을 생각하며 우붓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었다.


저녁 요가 후, 닭고기 라면을 먹고 숙소로 일찍 돌아왔다. 그녀와 커피라도 한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녁 근무를 서는 그녀를 생각하고 프런트에 갔는데, 웬 남자 직원이 앉아있다. 그에게 그녀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니 오늘이 쉬는 날이라고 내일모레 출근할 예정이라고 했다. 순간 아쉬움이 밀려왔다. 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물리적으로 어렵게 돼버린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이곳을 즐기기 위해 우붓 시내로 산책을 나갔다. 산책을 하며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체크아웃 전 프런트에서 종이와 펜을 빌려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상아유'였다. 그 편지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면,


'한국에서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했고 더 이상 버틸 기운이 없어, 처음으로 길게 휴가를 왔다, 여기 와서 요가와 명상을 하며 다시 에너지를 찾을 수 있었고 그중에 네가 내게 베푼 친절이 내가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발리는 뭔가 특별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도시다. 발리에 산다는 것은 행운이다’


라고 적었다. 다 적은 편지 사이에 상아유를 위한 팁 5달러 한 장을 넣고 잘 접어 프런트에 전달을 부탁했다.  


편지를 전달한 후에 미리 예약해둔 택시를 타고 꾸따로 이동했다. 꾸따는 우붓에서 차로 약 1시간 30분~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해변으로 공항에서 가깝다. 꾸따에서 지낸 지 2일째 되는 날, 대형 쇼핑몰 내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상아유에게 WhatsApp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걱정된다며 잘 있는지를 묻는 그녀는 나를 만나러 꾸따로 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친절이 고맙긴 했지만, 낯선 이를 만나기 위해 2시간 거리를 온다는 것이 좋다기보다는 의아하게 받아들였다. 이전의 나라면 거절했을 제안이었지만, 변화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안 하던 행동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녀에게 꾸따까지 와준다면 저녁을 사겠다고 약속했고, 그녀는 저녁시간에 맞춰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디다스, 상아유

그녀는 유니폼을 입고 일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디다스를 좋아하는 상아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디다스를 걸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던 도중, 우리는 서로의 나이를 듣고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갓 생일이 지나 만 나이로 36살, 상아유의 나이는 22살이었다. 나이 차이가 나도 너무 났고, 그녀는 나를 25, 26살 정도로 생각했다. 우리는 크게 한번 웃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호텔에서 스태프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원래는 정부기관에서 일하다 재미를 느끼지 못해 나왔다고 했다. 우리는 일본식 철판 볶음밥 집에서 밥을 먹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나의 편지를 받고, 내가 자살할까 봐 불안해서 왔다고 했다. 22살 아이가 내가 자살을 생각할 만큼 힘들다고 생각했고, 나의 자살을 막기 위해 2시간 거리를 차를 몰고 왔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그리고 고마웠다. 숙소에서 몇 마디씩 대화한 것이 전부인 낯선 사람에게 베푸는 그 마음이 따뜻했다. 그녀에 대한 의심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밥을 먹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수영장 베드에 같이 누웠다. 상아유는 나에게 줄 것이 있다며 들고 온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그 봉투에는 내 이름이 레터링 된 작은 케이크가 들어있었다. 발리에 도착한 첫날, 그녀는 그날이 내 생일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늦게라도 축하해주고 싶다며 케이크를 들고 왔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준비를 많이 했을 텐데 호텔 일로 바빠서 준비가 부족했다며 오히려 미안하다고 했다. 말로 할 수 없는 고마움에 할 수 있는 말은 고맙다는 말뿐이었다. 한국에서 버티는 것이 어려워 발리로 도망 온 나인데, 이곳에서 나보다 14살이나 어린 이에게 받는 위로와 축하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과 생일이 있을까. 그녀는 초가 없다며 들고 온 라이터를 켜주면서 소원을 빌라고 했다.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고 라이터 초를 불었다. 때마침 불어오는 시원한 밤바람이 내 마음을 두드리며 닫힌 마음을 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발리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밤은 그녀 덕에 더욱 특별해졌다.

상아유가 준비한 생일 케익

그녀는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스케줄을 물으며, 자신과 함께 구경을 다니자고 제안했다. 자신이 즐겨 다니는 곳이라며 사진들을 보여주고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적극적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것.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한국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녀의 진심을 받아들여 그녀가 제안한 여러 곳 중 한 곳만 들렀다 가기로 했다. 그날 상아유는 꾸따에 있는 친구 집에서 자고 아침에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힌두교 문화에서 미혼인 여자가 낯선이와 함께 자는 것은 굉장히 센세이션 한 일이다. 그리고 부모님이나 가족들이 알면 비난을 받을 뿐만 아니라 문제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보통의 인도네시아 여성이 아닌, 개방적 사고방식을 가진 상아유는 그날 내 방에서 잤고, 우리는 친한 친구처럼 자기 전까지 수다를 떨었다.


다음 날 아침 그녀와 여유롭게 조식을 먹고 비행기를 타기 전 울루와뚜라는 곳에 들렀다. 울루와뚜는 절벽에 위치한 도시로 서양인들이 서핑을 위해 많이 찾는 곳이다. 절벽 틈 사이로 치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자면 이곳이 천국이구나 할 정도로 현실감을 갖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상아유와 절벽에 위치한 음식점에 들어가서 빈땅(맥주)을 한 병씩 시켰다. 발리 교통체증을 고려하면 이제 곧 공항으로 떠날 시간이었다. 나는 상아유의 손등에 나의 손을 올리고 진심을 표현했다.


'상아유, 나는 발리에 와서 많이 좋아졌어. 그리고 너의 마음이 나를 낫게 했어(You heal me). 정말 고마워.'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만날 수 있다고 믿으면 그곳이 어디든 만날 수 있을 거야. 굳이 발리나 한국이 아니어도 괜찮아. 우리 다음에 꼭 만나자'


북받치는 감정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행복했다. 낯선 이에게 받은 이 마음과 베풂에 너무 감사했다. 그런 나를 보던 상아유도 놀랜 듯했다. 한국말로 나를 '언니'라고 부르던 상아유는 공항까지 바래다주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깊은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나는 체크인을 하러 가는 길에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고, 그 상처로 삶이 흔들리기도 한다. 발리에 와서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위해주는 낯선 이에게 그 상처를 치유받고 돌아가는 이 길이, 또 다른 의미로 나의 삶을 흔든다. 무엇 때문에 힘들고 무엇 때문에 행복해야 하는지 깨끗하게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발리로 왔어야만 하는 이유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삶은 고통이나 불행이 아닌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아직도 WhatApp으로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그곳이 어디든 다음에 만날 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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