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 개발자 장기영
2010년 개봉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주인공 마크는 이별에 대한 괴로움에 알코올의 힘을 더해, 여대생들의 입학 사진을 매칭 하여 소위 ‘이상형 월드컵’ 식의 외모 비교를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술김과 홧김에 탄생한 이 점잖지 못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했던 건 마크의 절친 에두아르도가 창문에 써놓은 알고리즘이었다. 창문 한편에 조그맣게 적어놓은 수학 공식 몇 개만으로 마크는 전 세계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영향을 미친, 페이스북이라는 어마어마한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의 전신이 된 서비스를 만든 것이다.
분명하게도 영화의 영향이겠지만, 2010년도 이후로 나에게는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현재를 너머 미래를 만들어가는 직업이자, ‘천재’를 대변하는 직업. 그러던 내가 어쩌면 필연적으로 개발자들 틈에서 함께 일한 지 한 달 남짓이 되었다. 알 수 없는 단어들을 섞어가며 대화를 하고, 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컴퓨터에 끊임없이 적어대는 이들을 곁눈질로 관찰 하기를 며칠. 끝없는 탐구와 앎에 대한 열정으로 끈덕지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이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개발자는 처음부터 개발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인간인가, 아니면 대부분의 인간이 끝내 깨닫지 못하고 놓치고 마는 인간의 탐구 본성이 발현된 존재인가?
장형은 개발자다. 팀에서 형님 나이에 속하지만 막내 같은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는 귀여움의 아이콘이자, 초 동안 미모를 자랑하는 장형은 쿡 찌르면 빽 하고 소리가 나는 만득이 인형 같은 매력이 있다. 짓궂은 팀원들의 애정 섞인 놀림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는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게 하고, 그가 속한 공간 전체를 밝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메뚜기 같은 안경을 쓰고 조용히 구석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장형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낯선 기분이 든다. 까맣고 하얀 디지털 도화지 위에 다소 경직되었으나 알록달록한 글자들을 써내려 가고 있는 장형은 어쩌면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의 대명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김종민처럼.
사실, 장형은 회사 내에서 불리는 별명이다. 회사에서 론칭한 비디오 커머스 서비스에서 송출을 담당하고 있는데, 개구쟁이 진행자가 장형을 몇 번 방송에 출연시키면서 마리텔의 모르모트 피디처럼 장형이라는 닉네임을 얻게 된 것. 이제는 진행상 보조가 필요하면 시청자들이 알아서 장형을 찾는다. 하지만 얼굴 정면이 한 번도 공개된 적은 없어 뭇 여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미스터리한 남자이기도 하다.
오늘은 장형의, 혹은 개발자의 미스터리를 풀어헤치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한 후, 몇 마디 여쭙고 싶다며 장형을 회사 근처 카페로 연행해왔다. 말솜씨가 없어서 걱정이라며 연신 청포도 주스를 홀짝이는 이 남자. 그렇지만 묻는 말에 막힘이 없이 대답이 나온다. 조곤조곤 이어지는 장형의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개발자는 홈페이지나 앱을 만드는 사람이다. 디자이너가 만들어놓은 환경이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코딩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만든다. 디자이너와 비교하자면, 보통 디자이너는 웹디자이너, 제품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렇게 분야별로 나누어지는데, 개발자는 자바, 닷넷 등 전문 코딩 프로그램의 종류로 나누어진다. 생각보다 디테일하고 섬세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자의 대부분은 남자들인데,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는 일도 허다하다 보니 체력전으로 가는 일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야근이 잦고 퇴근 후에도 많은 공부가 필요한 일이지만, 근데도 계속 개발일을 하고 있다. 이게 아니면 다른 걸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 일이 정말 재미있다.”
20년 전 갖게 된 개발자의 꿈을 한 번도 접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온 것 하며, 학교 다닐 때엔 교수님들을 찾아다니며 궁금한 걸 꼭 알아내려고 했었다는 장형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는 정말로 개발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형은 겸손한 손사래와 함께 동료들이야 말로 훨씬 뛰어난 개발자들이고,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배우는 점이 정말 많다고 대답한다. 개발자라는 직업이 특별한 것이 아니고 특별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직업이 개발자일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불가능이란 없다’를 몸소 보여주는 직업. 영화 <인셉션>에서 무한정 이어지던 무의식의 세계처럼, 내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더 넓은 세상을 머릿속에 그려두고, 그걸 모두가 알기 쉬운 언어로 세상에 내어놓는 직업.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까만 화면에 알록달록한 글자들을 쓰면 마법이 일어난다. 홈페이지가 생명을 얻는다. 멈춰있던 이미지가 움직이고 버튼이 작동을 한다. 보이는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지만,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문제를 끝까지 파헤쳐서 결국엔 해결했을 때 오는 희열이 정말 크다."
지금은 사람들의 중심에 있는 그도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처음에는 말도 없고 조용히 일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던 장형을 봉인해제시켜준 그의 절친 동료에게, 장형이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았다. 단번에 ‘귀여움’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날 때부터 몸에 배어있는 귀여움으로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매력이 있다고. 나이는 장형보다 동생이지만, 장형이 귀여워 스스럼없이 장난도 치며 회사 생활에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줬다고 했다. 달달한 음료만 마시던 장형이 커피를 좋아하게 되고 스타벅스에 가는 재미를 알게 된 것도, 5년째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도, 프로급 자세를 뽐내며 다트 던지기에 골몰하게 된 것도, 모두 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동료들에게서 받은 영향이다. 쑥스러워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말하는 그의 옆에서 조용히 사진을 찍고 있던 피디가 한 마디 거든다.
“장형은 회사 내에서 틈이 벌어졌을 때, 그 틈을 메워주는 풀 같은 존재예요. 그래서 무언가 부족하거나 누구든 필요한 일이 생기면 장형을 찾게 되고, 장형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게 되는 거예요. 지금까지 보셔서 알겠지만, 장형 주변엔 언제나 사람들이 있어요.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 장형에겐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이를테면, 모두가 좋아하는 호감형 인간이랄까요.”
2017년 5월 3일 수요일.
글_황은솔
사진_이현재
협조_플레이버 www.flavr.co.kr
장기영_
이메일 kiyoung.jang@purplework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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