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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vus Sep 27. 2020

19. 영재는 감독이 필요하다

넘치는 호기심이 영재를 위험으로 이끌지 않도록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인터넷상의 공간을 찾아간 나는, 단순히 다른 사람이 만들어둔 모임에 끼어들어 가기도 했지만 직접 그런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내가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즐겼던 분야, 혹은 취미는 꽤 다양한 편이다. 식물 기르기를 좋아했고, 화학 실험을 좋아했다. 직접 전자 회로를 꾸며 실험하는 것도, 생물을 배양하는 것도, 곤충을 키우는 것도 좋아했다. 어떤 분야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취미로 즐기고 있었고, 어떤 분야는 거의 혼자였기 때문에 새로운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나는 어떤 한 분야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면 깊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취미, 달리 말해 아마추어의 영역에서 문제점은 전문가가 정말 희귀하다는 것이다. 이론 공부이든 실험이든 틀린 부분이나 이론에 대한 조언,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을 감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식물이나 곤충을 키우면서 위험할 일은 없다시피 하겠지만 실험은 이야기가 달랐다. 종종 위험한 상황을 겪었지만 그걸 감독할 수 있는 사람은 비전문가인 부모님뿐이었다. 




위험천만한 일들


  내가 전자 실험을 좋아했던 때는 아두이노와 프로그래밍이 요즘처럼 대중화되기 이전이었다. '새소리 키트'같은 아날로그 회로들로 이루어진 회로 실습 키트가 교육에 쓰이던 시대였다. 난 이런 밋밋한(?) 회로보다는 결과물이 좀 더 극적인 회로를 좋아했다. 강한 전력을 소모하는 고전압이 만든 파란 스파크나, 전기 에너지를 열에너지, 운동에너지로 변환하는 그런 회로들이었다.


고압 방전. 금속 리튬을 전극으로 방전시켜 리튬 특유의 붉은빛을 볼 수 있다.


  고전력을 사용하는 회로는 항상 위험성을 안고 있다. 특히나 아마추어가 만든 회로에서는 높은 효율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고전력을 사용하는 저효율의 회로는 곧 엄청난 발열로 이어진다. 저런 회로를 꾸며 실험하며 각종 반도체 부품이 말 그대로 '폭발'하거나 고온에 금속이 녹아버리거나, 가끔 감전되기도 하는 등 위험한 일이 종종 벌어졌다. 하지만 설계상의 결함이나 고전압을 다루는 것보다도, 사소한 안전불감증이 가장 위험했다. 탁상 스탠드등을 고치려고 분해하다가, 기판에서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 손에 느껴져 확인해보니 220V 전원에 꽂힌 상태로 분해하고 있었다거나, 완전히 충전된 고압 고용량 캐패시터(감전되면 매우 위험하다!) 위로 떨어지는 물건을 맨손으로 잡으려 한다거나... 장갑만 끼고 있었더라도 훨씬 안전했겠지만, 실험 중 안전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고 깊게 생각해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본인만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전자 회로 중 발생한 사고가 끼칠 피해는 나 하나에 한정된 것이었다. 본인이 위험해지는 것도 다른 사고와 마찬가지로 안타깝고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조심해야 할 사고는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경우다. 


  생물을 배양할 때 항상 일어나는 일 중 한 가지는 원치 않는 생물이 급격히 불어나는 것이다(이런 상태를 '오염되었다'라고 한다). 오염된 배양 용기는 다른 배양 용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그리고 실험자와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 배양된 모든 생물을 죽이고(멸균하고) 버려야 한다. 배양된 생명체가 인간 혹은 가축,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015년 건국대에서 발생했던 집단 호흡기 감염 사건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생물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던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세균과 곰팡이에 오염된 배지를 적절한 처리 없이 폐기하고는 했다.


  내가 벌인 가장 큰 사고는 실제로 한 사람의 안전이 연관되었을 정도로 심각한 사고였다. 내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는 아니었지만, 간접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내가 실험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학을 좋아하는 영재아 중에 실험을 싫어할 아이가 있을까? 굳이 영재아가 아니더라도, 직접 실험하고 그 결과를 보는 것을 싫어할 학생은 얼마 없을 것 같다. 단순히 재미를 떠나서 이론을 실제로 증명하고 눈으로 관찰하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학교나 학원은 실습보다는 이론에 많이 치우쳐있었다. 실험으로 이론을 배울 수 있도록 교육한 곳은 오직 영재교육원뿐이었다. 현실적으로 연구실에 소속되지 않은 학생을 실험에 대해 가르치고 감독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을 직접 해보려는 열정이 넘치는 학생들이 있다면, 안전 수칙과 윤리 수칙만이라도 확실히 주지하고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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