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허락하는 가장 어린 학교 밖 청소년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의무적으로 가야 하는 집단은 무엇이든 싫어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기 싫어한 것은 정말 한결같아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인 '왜 가기 싫은가?'에 대한 답변은 이미 잊어버렸다. 구체적인 이유는 시간 속에서 사라져 버렸고, 가기 싫다는 본능만이 남아 있었다. 추측해보자면, 아마 첫 이유는 사람과 어울리는 게 즐겁지 않고, 어떻게 어울려야 할지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학원 선생님이 아이가 이상하다고 할 정도라면, 사람과 어울려야 하는 사회적인 곳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물론 그렇더라도, 친구가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머무는 장소와 하는 활동이 겹치다 보면 결국은 친해지게 되는 아이들도 있었다. 단지, 그런 친구와 지내며 얻는 즐거움이 사람과 어울려야 하는 것보다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다음으로,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쓸모없게 느껴진 것이 두 번째 이유일 것이다. 당시에 사회적인 부분은 학교에서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내가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는 인터넷으로 만나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아니었고, 학원에 다닌다면 학교 친구들과 다른 사람들을 만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학문적인 부분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혼자 공부하는 것이 더 값지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은 내게 대부분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국어는 모국어로서 당연히 아는 것들이었고, 영어는 학원에서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배우는 것들이었다. 과학은 워낙 좋아했던 학문이라 고등학교 과학 참고서와 전공서를 사서 공부했고, 수학은 고등학교 2학년 수준까지는 공부한 상태였다. 막연히 생각해 봤을 때, 학교에 다니는 것은 너무나 지루한 일이었다.
이런 생각에 더해서, 나는 학교 교육과정에 포함되지 않는 부분을 공부하고 싶어 했다. 학교에서 의미 없는 수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기보다, 차라리 잠을 자고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다루는 책을 읽는 게 더 도움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전공서를 부모님을 졸라 구매해서 읽기도 했고, 직접 실험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갖가지 핑계를 대며 일주일에 두세 번씩 유치원에 결석하던 아이가 결국 졸업했듯, 매번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는 다녀준다...!'며 건방을 떨던 아이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생각해도 놀랍게도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게 '정상적'인 과정이고, 아마도 더 쉬운 길이며, 더 많은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더해서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에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비교적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던 몫도 크다. 그 때문에 마냥 낙관적으로 교복을 사고, 교과서를 받아오고, 입학식에 갔다.
중학교에서 듣는 수업은 초등학교와 다를 게 없었다. 달라진 것은 반에 사람들이 더 많아졌고, 과목별로 담당 교사가 있으며, 더 '집단'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내 살갗을 보이는 것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했던 나는 체육복으로 갈아입어야만 하는 체육 시간이 고난이었다. 왜 교복을 입히고 '중학생'임을 강조하며 초등학생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하는지, 중학생다움과 초등학생다움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지 못했다. 수업에서는 여전히 뻔한 내용을 늘어놓았으며,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아이를 칭찬하는 모습을 보고 저 정도 수준이 왜 칭찬의 대상인지 의문을 느꼈다. 당시의 내게 가장 충격을 줬던 부분은 도덕을 맡은 교사가 나무 막대기를 어깨에 걸치고 들어와 '중학생처럼' 행동할 것을 요구할 때였다.
이런 모습은 내게 큰 스트레스였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더해서 나는 이런 스트레스를 감당할 정신력이 충분하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도 방학 때만 되면 겨울잠을 자듯 하루에 10시간 이상 긴 잠을 잤는데, 이를 두고 어떤 선생님은 학기 중에 받은 스트레스에서 회복하는 과정인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 나름 즐겁게 다닌 초등학교에서도 이 정도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중학교가 주는 스트레스는 얼마나 버거웠을까. 더욱이 사춘기를 보내며 친누나와의 갈등이 점점 심해졌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엔 이미 친누나를 싫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싫어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이지만, 싫어하는 대상이 가족이었기 때문에 나는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나를 가르쳤던 많은 선생님은 이런 가정사를 몰랐음에도 내가 자퇴 할 것을 예상했다. 당시의 나는 일종의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자퇴생에 대해 흔히 갖는 편견인 일탈을 걱정하는 사람도 없었고, 선생님들은 아마 혼자서도 잘 공부해서 목표를 이루리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학교를 그만두게 해 주라고 하는 선생님도 있었고, 그럴 줄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빠르다고 했던 선생님도 계셨다.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은 나를 고작 일주일밖에 보지 못했는데도 자퇴 후에 몇 가지 도움을 주시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결국은, 도망쳐 나오기를 선택했다. 나는 중학교 1학년 1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 만에 자퇴를 결정했다. 지금의 나라는 결과물을 만들게 된 두 번째 결정적인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