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avus Oct 07. 2020

21.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즐거움

꼭 해내고자 하는 집착력

  영재의 특성으로 흔히 여기는 것 중 하나가 '과제 집착력'이다. 과제집착력은 어떠한 분야를 끈기 있게 수행하는 인내심, 근면함, 실천, 자신감 등의 에너지를 말한다. Renzuli는 영재를 정의하는 세 가지 항목 중 하나로 과제 집착력을 제시하고 있고, 뛰어난 성취를 보인 연구자들은 연구 대상에 대해 고도의 집착력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1) 이런 과제 집착력은 영재가 가지는 또 다른 특성인 과흥분성과 연관되어 있는데, 5가지로 나누어지는 과흥분성 중에서도 특히 지적 과흥분성과 연관되어 있다. 지적 과흥분성은 호기심, 집중력, 문제 해결, 논리적 사고를 더욱 적극적으로 하고 문제 탐구를 계속하도록 만드는 특성이다. 이러한 지적 과흥분성은, 다섯 종류의 과흥분성 중에서도 영재가 일반 학생보다 가장 두드러지게 가진 특성 중 하나이다. 2)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사이, 그 어딘가


  나는 과학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것들에 흥미를 느꼈고, 글로만 접했던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초등학생 꼬마가 평범한 집에서 뭘 얼마나 해볼 수 있었을까? 아주 기초적인 수준을 넘어가면 금방 한계에 막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와는 접점이 없는 삶을 살아오셨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부모님께서 나를 위해 여러 방법을 찾아보더라도 내가 원하는 대학교 수준의 실험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줄 곳은 없었다. 그런 한계를 깰 수 있다고 느끼고 처음으로 도전하기 시작한 것은 13살 때의 일이었다.


  다양한 취미를 즐기던 나는 조금씩 영어를 읽고 쓸 줄 알게 되면서 구글 검색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영어권 사람들이 취미를 즐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서양권을 둘러보면 취미를 즐기는 깊이가 굉장히 깊은 사람들이 많다. "덕 중 최고의 덕은 양덕이다" 같은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로 비전문가라고 하기에는 꽤 전문적인 사람들이 있다. 


  내가 서양 웹에서 발견한 것은 배양기술이었다. 배양은 세포나 조직을 떼어내 무균 상태로 만들어 배지에 넣는다는 간단한 개념이지만, 다양한 세균과 공존하는 생명체를 '무균' 상태로 만들어 배지에서 배양한다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그런데도 서양에서는 취미 수준에서 배양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취미로 하는 배양이 발전해서 사업이 되거나 심지어는 배양 키트도 판매되고 있었다.


  이 기술의 존재를, 그리고 실제로 집에서 직접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배양을 꼭 해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마추어와 전문가 사이의 영역에 들어서려는 첫 노력이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


  사실 나는 시작한 일을 끝마치는 경우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A4 종이를 잘라 만든 작은 공책에 내가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해 작은 책으로 만드는 습관이 있었지만, 열 권을 만들기 시작하면 마지막 장까지 채우는 공책은 한 권 정도뿐이었다. 관심사가 너무나 빠르게 바뀌어버렸고, 그러면 이전에 진행하던 작은 계획은 쉽게 그만두고는 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끝을 본 목표가 배양이었다.


  배양에 성공하겠다는 집념은 지금의 내가 돌아봐도 대단했다. 부족한 영어로 사전과 구글 번역기를 펼쳐놓고 조직배양을 다룬 웹 포럼을 가장 첫 글부터 쭉 읽으며 통째로 번역하다시피 했다. 처음으로 학술 논문을 찾아 읽은 것도 이때였다. 포럼이나 논문을 읽으며 영어 실력이 부족해 도저히 안 되겠다고 느껴질 땐 아버지 직장 동료분께 번역을 부탁하기도 했다. 한국어로 된 최신 책을 찾을 수 없어 영어 원서를 구해 읽었으며 배양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업체를 매주 찾아가며 직접 보고 배우기도 했다. 필요한 기구를 찾고 디자인해 아버지와 함께 만들기도 하고, 필요한 시약을 회사의 도움을 받아 구하기도 했다.


  지금의 내가 다시 저 시기와 같은 기본지식을 가지고 같은 목표가 주어진다면 아마 더 쉽고 빠르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겠지만 13살의 사고 수준과 당시의 모자란 영어 실력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실험을 아마추어 수준으로 직접 하는 사람이 없다시피 한 한국에서는 영어가 아니면 정보를 얻기 어려웠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배양을 하기 위해 들였던 노력, 직접 책을 찾아 읽고,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논문을 찾고, 사람을 찾아 만나고, 직접 실험하는 일까지, 그때 노력했던 것은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이다.


배양된 세포 덩어리


  그런 갖은 노력을 들인 끝에, 결국은 성공해냈다. 한국에서 아마추어 일반인이 배양을 한 것도, 배양을 아마추어 수준으로 하기까지의 과정을 온라인으로 기록한 것도 거의 처음이었다. 이런 노력을 들인 결과 성공을 맛본 경험도 내게는 흔치 않았다. 생물체를 완벽히 인공적으로 관리되는 환경에서 키워보겠다고 생각한 것이 목표를 가지게 된 동기라면, 새로운 영역을 직접 개척하는 즐거움과 공부하고 진척을 만드는 즐거움이 과제 집착력을 높게 유지할 수 있었던 동기인 것 같다.




References

1) 박미진, and 이용섭. "과학영재학생의 학습동기와 과제집착력과의 관계." 영재교육연구 21.4 (2011): 961-977.

2) 신원태, 유미현, and 윤여홍. "영재학생과 일반학생의 과흥분성 비교 및 영재의 성별, 학교 급별에 따른 차이 분석." 영재교육연구 21.3 (2011): 741-760.

이전 21화 20. 학교를 뛰쳐나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