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avus Oct 09. 2020

22. 재능이 잘못 끼운 단추

영재의 고집과 편벽

고집스러운 재능


  내가 하고자 했던 일에는 깊게 몰입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바로 이전 글에서 소개한 배양 기술을 터득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모든 일에는 그랬다. 수없이 이어지는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도전했고, 자발적으로 자료를 찾아 공부했다. 중간에 막혀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때가 되면 다른 사람과 상의하며 해결책을 찾아냈고, 결국은 목표한 것을 이루어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집중력과 노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대단하다고, 나이에 비해 달성하는 수준이 높다는 칭찬이었다. 


  문제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은 하려고 하지 않았다. 단순히 '해야 한다'는 이유로 부족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도 '내가 하고 싶다'가 동기라면 내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동기가 있어도 내가 흥미가 없다면 별로 노력을 들이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여도 초등학교 때는 문제 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노력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시험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와 각종 상장을 받았다. 사교육을 받으며 중학교 교육과정과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기초적인 부분을 배울 때도 별다른 노력 없이 진도를 따라갈 수 있었다. 단순히 교육받는 것을 넘어서 각종 경시대회와 능력시험에서도 마찬가지로 노력 없이 입상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과학적 탐구를 제외한 공부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노력이 없어도 성공이 가능했고, 한두 번 실패하더라도 '노력한 게 없는데 뭐, 당연하지' 같은 합리화가 가능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지내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결과가 좋기까지 했으니 굳이 하기 싫은 일에 공을 들이려 했을까.




오직 원하는 것만 하고 지내는 삶


  사실 대부분의 아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체계적인 공부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력 없이 성과를 달성하는 건 일부 아이만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러한 상태로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대부분은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어떤 학문에 노력을 들이는 방법을 스스로 알게 되고, 이제는 노력과 성취가 비례한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중학교를 1달도 다니지 않은 채로 자퇴했다.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점들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더해서 아무리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성격이더라도 학교에 있는 시간만큼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관심 없는' 것들을 공부했을 텐데, 학교에 나가지 않으니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전혀 공부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해방된 나는 정말로 원하는 것만 공부하면서 지내게 되었다. 학교에서 이미 아는 것들을 지루하게 복습하고 있지 않아도 되고, 관심 없는 내용을 애써 공부할 필요도 없었다.


  자퇴할 때의 나는 대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직업이면 몰라도,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려면 결국은 대학교와 대학원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 수능을 잘 봐야 한다는 목표도 있었다. 학교를 그만두면서도 부모님께 더 잘하겠다고, 남들보다 일찍 대학교에 들어가서 금전적인 부담을 덜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더 일찍 시작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수능을 대비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게 동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학교 공부는 하기 싫은 것이었다. 수능을 얼마나 잘 봐야 할지에 대한 목표도 없었고, 막연히 잘 봐야겠다고 생각했으며, 당연하게도 수능을 잘 보려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노력해야 할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네 재능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만들었구나." 자퇴 하고 4년 즈음 뒤에 나를 알게 되신 어떤 교수님께서 해주셨던 이 말이 아직도 뇌리에 강렬히 박혀있다. 내가 흥미를 느낀 분야에서 아마추어라고 하기엔 굉장히 전문적인 수준으로 탐구하고 있지만, 정작 그 나이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것, 미래를 위한다면 그때 해야만 했던 것, 즉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손을 놓고 있었던 모습을 보고서 하셨던 말씀이었다.



  이렇게 내 첫 단추가 어긋났다.

이전 22화 21.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즐거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