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의 시작
길지도, 짧지도 않은 15년의 시간을 보내며 정말 독특한 삶을 만들었다. 운이 좋게도 영재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과 선생님을 만나 내 영재성이 잊히지 않도록 좋은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영재성과 내 성격은 부작용을 나타냈는데, 바로 사회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영유아, 아동기에는 학교 사회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청소년기가 시작되면서는 학교에서 자퇴해버렸다. 사람에게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나와 물리적으로 교류하는 사람은 오직 가족으로 제한되었다. 이 선택을 한 결과 내 사회성은 제대로 발달되지 못했고, 주변 환경과 나의 아직 부족한 점들이 나를 미성취로 이끌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점은, 자퇴한 뒤 나의 물리적인 활동 영역이 사회적인 활동 영역과 똑같아졌다는 점이었다. 학원에 갈 때 혹은 가끔 독서실에 갈 때를 제외하면 언제나 집에 머물렀고, 그 집에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많은 사람에게 집은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만약 집의 정의가 이를 반영해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면, 그때의 나는 집이 없었다. 독서실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면서부터 끔찍한 스트레스를 느꼈다. 그 사람이 있는 집에 돌아가기 싫어 일부러 늦게까지 있다 나오기도, 천천히 걸어 돌아가기도 했다. 매일같이 이유를 알 수 없는 편두통에 시달렸다. 갑작스럽게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의, 뇌를 송곳으로 뚫는 듯한 통증이 짧고 강렬하게 찾아왔다.
몇몇 선생님과 어른은 내가 이렇게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실을 눈치채기도 하셨다. 미장원의 미용사분께서 어린아이가 왜 탈모가 있느냐고 물어봤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에서는 숙제로 적어내는 일기에 친누나와 관련된 일을 적어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논술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내게 탈모가 생겼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집에 들어서면 내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모든 물건에 과거가 스며들어 있었다. 커다란 시계, 그림, TV, 서랍장, 방문, 소파, 책상... 모든 물건에 빠짐없이,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생각하기도 기억하기도 싫은 과거가 새겨져 있었다. 말다툼을 하다 폭행당해 발랐던 연고, 나를 위협하며 몰아붙였던 유리 창문, 화가 난다며 죽도로 내리쳐 부순 식물 재배 공간,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식물을 창밖으로 던져버린 후 남은 화분, 집어던져 다리가 부러진 안경, 찬물을 맞은 소파... 부모님과 친누나가 싸운 날이면 부모님이 자는 새 물리적인 앙갚음을 당할까 두려워했고, 내가 친누나와 싸운 날이면 온몸이 분노로 끓어 넘치며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는' 상태를 유지했다. 내가 나를 조절하지 못해 끔찍한 짓을 저지를까 자신을 두려워했고, 매일같이 저런 사람만은 되지 말자고 새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15세에 독립했다. 비록 부모님과 차로 이동할 때 10분 정도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곳이긴 했지만, 그곳의 적막하고 좁은 방에서 혼자 먹고, 자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된 나는 종종 부모님께 혼자 살고 싶다고 떼를 썼다.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친누나와 함께 사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내가 혼자 살게 된 날은 친누나와 심한 싸움을 몇 번 연속적으로 한 날이었다. 싸움의 이유는 사소했다. 단순한 양보와 배려의 문제였다. 모든 것을 자신이 만족스러운 대로 하고 싶어 하는 친누나와, 사춘기를 지내고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조금씩 반항을 시작한 나 사이의 갈등이었다.
여러 차례 싸움을 벌이며 어머니는 결국 이렇게 싸우며 사느니 누군가 나가 사는 게 낫겠다고 말씀하셨다. 지난밤의 싸움이 다음 날 아침까지도 이어진 어느 토요일 낮에, 부모님은 결국 나를 데리고 나와 원룸을 계약했다. 15살 아이와 21살 성인 중 15살짜리 아이를 내보내길 선택할 정도로, 친누나는 대화가 힘든 독재자였다.
항상 혼자 사는 삶을 바라왔지만, 이렇게 빠르고 갑작스럽게,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는 아니었다. 집에서 도망쳐 나와 독립하면서, 아직까지도 내가 걷고 있는 지독한 악순환의 고리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라는 결과물을 만든 세 번째 결정적인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