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눈을 뜨면 익숙한 무늬를 가진 천장이 눈에 보이고, 방에서 나가면 나를 아끼는 어머니와 내가 키우는 식물들이 있으며,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귀여운 강아지가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소파에서 자고 있던 때가 있었다. 그런 평범한 일상은 조각나 기억 속에 가라앉았다. 이제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차가운 하얀빛을 내는 형광등과 아무런 감정도 묻지 않은 텅 빈 천장뿐이다.
책상 옆에 깔린 이불에 누우면 작은 방의 천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흰 바탕에 형광등 하나가 있는 단조로운 천장이었다. 그 텅 비어있는 천장을 보며 이제는 정말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동시에 깊은 원망이 끓어올랐다. 나는 모두와 격리된 채 좁은 방에 무기력하게 누워있지만, 날 이렇게 만든(적어도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은 이전과 다름없는 삶을 누리며 편안하게 지낸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내가 행복감을 느끼던 것들, 반려견, 식물, 실험이 한순간에 내 일상에서 사라졌다.
사람에 대한 원망은 어쩔 수 없었지만, 내가 즐기던 수많은 취미를 언젠가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수능을 치르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취미에 들일 시간과 노력을 전부 시험공부에 쏟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혼자 살게 되며 자연히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2년 안에 대학 입시를 마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목표를 갖고 긴 항해를 시작하기엔 이미 배에 수많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오직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 옆에 있어도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시험을 위한 공부를 경험해본 적 없을 뿐 아니라, 흥미가 없었고 목표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저 '최고'가 되겠다며 세운 공부 계획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룰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영재성은 노력 없는 성취를 안겨주었고, 동시에 완벽주의를 심어주며 노력과 성공의 상관관계를 감추어 두었던 것 같다. 영재의 핵심 특징 중 하나인 완벽주의는 물론 긍정적인 작용을 하기도 하지만, 본인이 설정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 우울함이나 불안 등 심리적인 부적응과 자기비판, 미성취를 겪을 수 있다.1)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한 사람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나의 트라우마와 분노를 억누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정신력을 쓰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 있는 사람은커녕 그 누구도 내 곁에는 없었다. 내가 행복함을 느끼도록 해주던 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내가 세웠던 계획은 애초에 달성이 불가능했고, 매번 실패하는 나를 보며 끝없이 자책했다.
나는 그렇게 침몰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 찬란하던 빛이 꺼져버린 자신을 발견했고, 자책과 자기혐오는 숨 쉬듯 당연한 일이 되었다. 부정적인 생각의 굴레에 갇혀 늪에 침몰해버렸고,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무기력하게 누워 시간을 흘려보내며 후회하는 것을 제외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요즘 내 상태는 꽤 위험한 것 같다. 자기혐오가 짙어진다. (...) 두렵다. 실패가 두렵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왜그럴까. (...)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것같다. 하지만 그럴 용기도, 돈도, 시간도 없다.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사는 만 15세 학생이라니. 누가 봐도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 4학년 즈음부터 받아온 가족으로부터의 스트레스를 6년째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으며 친구를 만나지 못한채 3년, 이제는 혼자 살며 가족과도 분리되었다. 그냥 슬프다. 마음이 가라 앉는다. 어떤걸 해도 즐겁지 않다. 걱정이 쌓인다.
2015년 7월
끔직하다. 글을 쓸때마다, 아니, 항상, 매일, 이런 생각을 한다. 난 대체 뭘 한거야? 뒤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이런 생각을 한지 1년이 넘은것 같다. (...) 나는 억울했다. 난 집을 나와서 엄마와, 아빠와 보낼 시간을 홀로 보내고 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집에서, 따듯한 집에서 같이 보내고 있다. 이것저것 사고, 하고싶은걸 하면서, 편안히 보내고 있다. 너무 억울했다. 난 이렇게 살고 있는데, 우울증까지 겪으면서 사는데 어떻게 저렇게 당당히 사는거지.
2015년 10월
나는 깊은 늪의 바닥에서, 서서히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빛을 잃어버린 것 그 자체보다 빛을 잃어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며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서서히 썩어들어가는 내 영혼은 그 당시엔 잘 느껴지지 않았다. 후회의 굴레에서 부패하는 과정은 전주곡이었을 뿐,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이미 문드러진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였다.
References
1) 전경남. "영재와 일반학생의 완벽주의에 관한 메타분석." 영재교육연구 28.1 (2018):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