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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vus Sep 25. 2020

18. 학교 바깥에서 친구를 찾았지만


  진실로 나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다. 가끔 어머니께 내가 막 발견한, 혹은 찾아 읽은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면 그저 묵묵히 들어주시고는 했다. 관심이 있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이야기지만 '네가 좋아하면 됐어'라고 하시며, 내가 들떠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학교에 써내는 일기장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날 관찰한 것, 실험한 것, 알게 된 것, 그리고 궁금한 것들을 적었다. 선생님들은 답변을 달아주시기도 했고, 내게 일기에 대해 추가로 물어보시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을 함께 좋아해 줄 친구가 학교엔 없다는 것을 일찍이 알아차렸고, 그런 이야기는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다. 영재교육원에 가도 내가 탐구하고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터놓고 얘기할 친구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나 선생님과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같이 하고 싶어 하고, 궁금해하는 것을 같이 궁금해할 사람이 필요했다. 


  진실한 친구가 없다고 느껴진 사실이 슬프거나 외롭지는 않았다. 소속감이 없더라도 잘 살아가는 천성 덕분인지, 구태여 내가 관심 없는 것에 관심 있는 척하며 무리에 더 깊게 소속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막 알게 된 너무나 재미있는 일을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싶은, 그런 욕구는 있었다. 이런 욕구가 좌절되면서, 혹자가 지적 외로움이라고 표현하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는 했다.




누구보다 멀리 있는 사람을 누구보다 가까이 연결해준 인터넷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인터넷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는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나이와 직업, 장소에 상관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흥미 있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온라인상의 공간이었다. 나는 그렇게 학교 바깥에서 친구를 찾았다. 초등학생 때 인터넷에서 알게 된 친구 중에는 아직도 매일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도 있다.


  마침내 내가 흥미 있어 하는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있는 집단과 친구를 찾았지만, 문제는 그 장소가 인터넷이라는 점이었다. 내게는 학교에서 직접 만나는 사람들보다도 인터넷에서 알게 된 진짜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더 중요해졌다. 인터넷에 접속해야만 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게 온라인 세상은 오프라인 세상만큼 중요해졌다. 그 결과는 인터넷 중독에 가까운 상태였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바로 랩톱을 가져와 앉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을 돌아다녔으며, 자기 직전까지 랩톱 앞에 앉아 있었다. 부모님은 이런 모습에 걱정하셨지만 내게 온라인 공간은 무언가 특별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으셨다.


  친구와의 관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청소년기 아이들의 특징은 내게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보다도 더 편하게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그 사람은 가장 친한 친구였다. 여기서도 나와 그 친구는 인터넷에서 만났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 사람들에게 인터넷은 그저 취미를 즐기는 동안만, 혹은 여유가 있을 때만 찾아오는 공간이기 때문에 흥미가 떨어지거나 생업이 바빠지면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지고는 했다. 무엇보다도 온라인에서 만난 '나'보다 더 중요한 현실의 친구들이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호기심을 해결하고 내가 알아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그러니까 일상을 이야기하기 위해 온라인의 공간을 찾아갔다. 현실의 친구 중,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었다.


 지금에 와서야 인터넷상의 관계가 그저 일시적인 관계라는 것을 알고, 절친한 친구와 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인터넷상의 관계에 매달리지 않지만, 친한 친구도 없으며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과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잘 깨닫지 못했던 어릴 때에는 그 관계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 당시의 내게 가장 중요한 관계가 상대방에게는 일시적인 관계였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연락이 뜸해지는 때가 찾아오면 나는 매번 가장 친한 친구를 잃는 듯한 감정을 겪었다. 친하게 지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 왜 멀어지는지 궁금해하고 심지어는 화가 날 때도 있었다.


  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영재교육 제도 역시 단순히 영재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었으면 한다. 나는 학교에서도, 영재교육원에서도 내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친구를 찾지 못해 온라인 속의 인간관계에 과하게 몰입했다. 이랬던 내게 올바른 인간관계를 가르쳐줄 사람이 있었다면 달라지는 점이 있었을까? 당시의 나는 듣지 않으려고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소중하다고 생각한 사람을 잃는 과정에 더 건강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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