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아는 비동시적 발달을 겪는다. 비동시적 발달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말 그대로 한 사람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이 균일하게 성장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영재는 일반적으로 학습 속도가 빠르고 합리적, 분석적이며 호기심이 많다. 1) 그렇기 때문에 지적인 성장은 빠르지만, 정서적 성장과 신체적인 성장은 지적인 성장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불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지적인 성장에 환경을 맞추기에는 정서적, 신체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불일치는 친구를 사귀기 어렵게 만들고,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소속감에 대한 욕구를 좌절시키게 된다. 그 결과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고립감과 외로움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부적응을 겪으며 우울증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생활은 정말 운이 좋았다. 내가 무례하거나 부도덕하다고 여겨지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던 것과 모두에게 친절히 대한 것도 아이들 사이의 무난한 평판을 얻는 데 영향을 주었겠지만(사족이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며 친구들끼리 사 먹고는 하는 문방구 '불량식품'을 한 번도 사 먹어 본 적이 없으며, 지금껏 살아오며 길가에 쓰레기를 버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무엇보다도 3학년 때 나를 맡으셨던 담임선생님께서 나의 영재성을 같은 학년의 아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공개하도록 이끌어 주셨던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그 이후 학년이 바뀌어도 내가 평범하지 않은, 즉 나이 때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더라도 친구들은 신경 쓰지 않고 '나'를 '나'로 보며 어울렸다.
문제는, 학교 바깥에선 나를 이렇게까지 보호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나이에 맞지 않게 더 앞서 나아갈 때면 매번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과학 영재교육 학원에서 7살 때 들어간 2학년 교육과정의 다른 수강생은 나를 탐탁지 않아 했으며, 수업을 듣는 와중에도 나를 좋게 대해주지 않았다. 결국은 어떤 학생의 학부모가 나를 수업에서 제외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그 수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나와 잘 맞는 선생님께서 운영하는 학원에서는 3학년 때 중학생들과 수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때도 서늘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고등학생 이상이 대상인 대학 공개 강의를 수강했는데, 강의를 진행하시는 교수님은 수강생 중 가장 어린 나를 많이 신경 써주셨다. 연세가 있으신 교수님이라 손자 같은 어린 학생을 좋아했던 이유도 있겠지만, 수업 중 교수님께서 던지는 질문에 흥미로운 답안을 내놓았기 때문에, 굳이 표현하자면 영재성을 나타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강의를 들으며 다른 수강생들 못지않게 좋은 답안을 여러 번 이끌어냈고, 그럴수록 교수님은 나를 마음에 들어하셨다. 예시를 들 때 나의 이름을 사용할 정도로 좋게 봐주셨지만 그뿐이었다. 이 강의는 학부 강의처럼 평가와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강의의 본질을 흐릴 정도로 나에게 집중하셨던 것도 아니었다. 강의가 끝나면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수강생의 항의였다.
결국, 내가 받을 수 있는 교육은 방문 학습지나 과외처럼 진행하는 교육, 혹은 영재교육원의 영재교육뿐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내 교우관계는 원만했다. 함께 다니는 '무리'가 생기기도 하고, 그런 무리를 넘나들며 모두와 어느 정도 이상으로 친했다. 학업적인 문제가 생기면 아이들은 대개 나를 찾아왔고, 사실상 인기투표나 다름없는 초등학교 반장선거에도 자의, 혹은 타의로 출마해 매번 당선되기도 했다. 하지만, 겉에서 보이는 이 정도가 내 인간관계의 전부였다. 학년이 바뀌고 반이 바뀌면 나는 마치 없었던 사람처럼 친구의 삶 속에서 사라져 버리곤 했다. 매 학년 상황은 비슷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와 친구들 사이의 괴리는 커져만 갔다. 친구들이 보는 TV 프로그램은 예능이었다. 학교에 와서도 전날 방영한 예능 이야기를 했다. 반면, 나는 예능은 고사하고 TV 자체를 안 보거나 가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예능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친구들이 학교를 마치고 나서 같이 하는 것은 주로 게임이었다. 당연히, 학교에서도 게임 이야기를 했고, 같이 PC방에 갈 약속을 잡기도 했다. 나는 게임을 안 하는 사람이었다. 게임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친구들이 취미로 게임을 하고, 가수와 연예인의 팬이 되어 팬 활동을 할 때, 내가 취미로 즐겼던 것은 생물, 화학 실험을 직접 하고, 식물과 동물을 키우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학교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빌리거나, 혹은 전혀 가지 않을 때, 나는 아무도 빌리지 않아 한 번도 접히지 않은 기초 과학 교양서나 교사용 책장에서 소설책, 전공서를 꺼내 빌려왔다.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면 나는 친구들과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친구들과 공유하는 것은 학교라는 공간과 그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뿐이었다.
처음에는 학교가 끝나면 같이 놀지 않겠느냐고 물어보거나, 예능이나 게임, 연예인 이야기를 할 때 내게도 그런 것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자신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아채는 데는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학교 안에서만 어울릴 뿐이었다. 내 남다른 도덕적 기준은 나를 다른 아이들과의 세계와 더욱 확실히 떨어트려 놓았는데, 이것을 가장 확실하게 느낀 것은 같은 반 두 아이의 '맞짱' 계획을 나를 뺀 모두가 알고 있었던 때였다.
학교에서 이렇게 불안정하고 약한 관계만을 맺고 있었는데도 나는 괜찮다고 느낀 이유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성격과 나의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학교 바깥의 다른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그런데도 종종 '지적 외로움'을 느끼고는 한다(지적 외로움이란 사실 없는 말이지만, 한 누리꾼이 사용한 표현이 너무나 와 닿아 종종 사용하고는 한다). 내 나름 관심사를 공유할 다양한 사람과 나를 오롯이 알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도 이렇다면, 이런 행운을 누리지 못한 다른 영재들은 어떠할지 상상하기 어렵다.
References
1) 윤형주, and 윤여홍. "부모의 지각에 따른 유아영재의 비동시적 발달특성."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