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avus Sep 16. 2020

15. 학교에 가다

학교에서 채우지 못한 호기심을 어떻게 채웠을까?


  나의 유아기가 어떠했든지 간에, 비록 갖가지 핑계를 대며 주에 한 번, 두 번씩 유치원에 결석하고, 가족과 다투고, 혼자 흥미롭다 여기는 일들을 하고... 결국 시간은 흘러서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유치원을 주에 한두 번씩 빼먹으며 졸업식에서 옆에 앉은 친구에게 귀찮게 쓸모없는 졸업증을 나눠준다며 불평하던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고, 여전히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 그런데도 유치원을 다닐 때 보다 학교에 잘 나간 것은, 아마 부모님의 노력이 가장 컸을 것이다.



가기 싫은 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학교 적응을 돕기 위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분홍색 교과서로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가르쳤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중 필자와 비슷한 나이 때의 분이 계신다면,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같은 제목에서 어렴풋한 향수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 간단한 산수나 받아쓰기 같은 것들은 정말로 지루한 일들이었다. 2학년 때는 학교에서 무엇을 했는지 보다, 담임교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마 편향된 기억이겠지만 내가 2학년 담임교사에게 느꼈던 것은 부조리였다. 당시 고학년 형들조차 들어보지 못한 욕을 구사하며 체벌을 하는 등 여러모로 엄하다, 혹은 포악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선생님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구구단을 외우게 하고 자주 시험을 보는 등 가르치는 것이 많은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학부모 사이에선 인기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학교에 가기 싫어했던 나는,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싫어하는 사람이 담임교사가 되자 더욱 학교에 가기 싫어했고, 그런 마음은 약한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났다. 심각한 것은 아니고, 학교에 가야 할 아침이 되면 속이 안 좋아지며 구토를 하는 것이었다. 꾸며낸 증상이 아닌 정말로 나타난 증상이었지만, 이 증상을 이용해 학교를 결석하고 나면 금세 괜찮아지고는 했다. 한 번은 이것을 꾀병으로 여긴 선생님이 날 앞으로 불러내 학교에 오기 싫으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그렇다고 대답했고,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자주 꾸중을 듣는 같은 반의 다른 아이를 불러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 아이의 학교가 좋다는 대답을 듣자, 기다렸다는 듯 반 아이들에게 "얘는 학교가 오기 싫다는데?"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 이후로 나는 선생님의 욕설과 체벌을 기록해 고소하겠다는 큰 꿈을 가지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수첩에 기록하고는 했다.



부모님의 노력


  학교에 이렇게 가기 싫어했던 시기를 큰 탈 없이 넘겼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며 죄송스러운 부모님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유치원을 다닐 때처럼 함께 걸어가고, 다시 걸어오고, 어느 날은 버스를 타기도, 어느 날은 학원 차에 태워 오기도 했다. 그렇게 하다가도 안 되는 날이면,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네가 가지 않으면 엄마랑 아빠가 감옥에 가야 한다며 타이르곤 하셨다. 그러면 나는 건방지게도 초등학교는 가주지만 중학교부터는 안 갈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한다.


  이런 노력 외에도, 흥미로울 일이 없는 지루한 학교 대신 내게 다양한 흥미로운 일을 경험하도록 노력하셨다. <신비한 미생물 체험전>이나 보건환경연구원 체험학습에 데려가시고, 내가 좋아하는 실험을 위주로 교육하는 학원을 찾아주셨다. 심지어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종로 3가의 상가에서 당시에 꽤 고가였던 현미경을 선물해 주시기도 했다. 장난감 현미경이 아닌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준수한 광학현미경이었다. 이후에는 학교에 각종 과학 기자재를 납품하는 업체에 찾아가 각종 원생동물을 관찰할 수 있는 키트를 사주시기도 했다. 이때 구매한 원생동물은 집에서 혼자 관찰하며 디지털카메라로 기록하기도 했고, 학원 선생님과 함께 관찰하기도 했다. 

당시 관찰했던 짚신벌레

  미생물을 정말 좋아했던 2학년 때는, 세균을 직접 키워보고 싶은 마음에 집에서 미생물 배지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만들어 보기도 했다. 설탕, 소금, 효모, 우유, 한천 등을 이용해서 만드는 것인데, 필요한 물질을 사고 쓰는 것을 허락해주셨을 뿐 아니라 이런 괴상한 액체를 전기밥솥에 넣어 멸균하겠다고 하는 것마저 함께 해주셨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부모라면 하지 못했을 법한 일들을 많이 해주셨다. 내가 좋아할 전시관이나 체험학습을 어떻게 찾아오셨을까? 나랑 잘 맞을 것 같은 성격을 가진 학원은 어떻게 찾으셨을까? 현미경을 사주고, 식자재로 만들긴 했지만, 고약한 냄새가 나는 불쾌한 액체를 밥솥에 찌는 일은 여러모로 도전적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지 않았다면 학교에 더욱 가기 싫어했을 것이고, 지루함과 무기력함에 잡혀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평범함에서 크게 벗어나는 아이를 위해서 함께 평범함에서 벗어나는 고생을 겪은 두 분께 정말 감사하다. 

이전 15화 14. '나'라는 결과를 만든 시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