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avus Sep 14. 2020

14. '나'라는 결과를 만든 시작

자신을 하찮게 여긴 영재아


  나는 나 자신에 대한 평가가 왜 이렇게 가혹했을까? 객관적인 내 지능은 상위 1~4%에 있지만, 주관적인 나는 지능은 물론이고 인간관계까지 하위 5%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검사 결과를 본 대학 부설 영재교육원의 교수님께서도 이런 결과는 매우 이례적이며 가정 내에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하셨다. 다른 심리검사와 종합했을 때, 가정 내에서 부모의 위치가 낮아져 있고 친누나가 부모의 위치에 대신 올라 있는데 이 부분이 문제일 수 있고, 동생이 영재인 경우 대개 친형제 또는 남매도 영재일 가능성이 높아 가능하다면 친누나와도 상담을 진행해 보고 싶다는 의견을 주셨다. 


  아동기, 청소년기에 형성되는 자아 개념은 중요하다. 내가 받은 자아 개념 검사의 해설서에서는 "긍정적 자아개념은 학업성취, 진로선택, 자기통제력, 유연성, 적응력 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개인의 심리적인 만족감을 높이는 등 다양한 긍정적 결과물의 예측 요인으로 작용합니다."라고 적혀있다. 1) 굳이 권위 있는 논문이나 해설서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과하지 않은 한 필수적이며 특히나 빠르게 성장하는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더욱 중요하리란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성인들에게도 '자아존중감'을 강조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내 자아 개념은, 나의 '자아존중감'은 어째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었을까.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어릴 때,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까지의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유아기의 내가 어땠는지 알기 위해서 심리 검사 결과서와 학원 학습보고서, 그리고 아버지께서 남겨두신 일기를 보며 과거를 되짚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잊어버린 기억은 어쩌면 나의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리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수많은 일이 내게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을 때, 속을 갉아 먹히는듯한 답답함과 내 삶에 단 한 사람이 미친 영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어 압도되어버렸다.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 수행된 다수의 연구에서 아동의 자아개념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요인은 부모와 또래, 두 가지인 것으로 입증되었다. 특히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유아기는 부모가, 즉 가정이 주된 요인이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또래 관계 및 교사와의 관계가 점점 중요해진다. 유아기에서 부모가 자녀를 애정으로, 자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양육한다고 인식하는 경우는 긍정적인 자아개념이, 반대로 자녀를 거부하고 통제하며 양육한다고 인식하는 경우 부정적인 자아개념을 갖게 된다. 2) 내 유아기가 특수했던 점은, 친누나가 부모 노릇을 하길 원했고, 부모님께서도 어느 정도는 친누나에게 그 역할을 맡기기도 했다는 점이다. 친누나 역시 학문에 뛰어난 편이었고 부모님께서는 내가 친누나의 특히 이러한 부분을 닮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다. 


  유아기의 친누나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말하자면 양육 방식은, 통제였다. 아버지의 일기에는 "항상 잡혀 살고 눈치 보는 동생이 불쌍하다"라고 적혀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부싸움을 겪을 때 눈치를 보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하는 것처럼, 친누나와 부모님이 싸울 때 나는 싸움의 원인이 된 일을 해결하려 했다. 친누나의 물건은 함부로 만지면 안 됐고, 친누나의 책은 함부로 읽을 수 없었으며, 새로운 책을 사게 되면 내가 읽기 전 친누나의 '검열'이 있어야 했다. 아버지의 일기를 읽으며 가장 충격받았던 것은 내가 친누나의 화풀이 대상이었다는 점이었다. 하루는 아버지와 친누나가 싸우며 친누나가 내 얼굴을 찌르거나 내 얼굴을 '걷어찼다'. (일기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왔다.) 그때 나는 7살, 그리고 친누나는 13살이었다. 내가 친누나와 싸울 때는 내 노트를 내 앞에서 찢어버리거나, 정신 차리라며 찬물을 뿌리기도 했다. 이 시기 부모님은 주로 나를 먼저 보호하고 친누나를 말렸지만, 그러면 친누나는 자신을 차별한다며 더욱 화를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권과 관련하여 여러 부분에서 개선되고 있는 현재의 시선으로 보자면 일종의 학대와 그것을 학대라고 생각하지 못한 부모님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낮은 자아개념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나를 아껴주고 신경 쓰는 부모님이 계셨지만, 간접적인 학대를 받았다. 나의 영재성은 유치원이라는 유일한 가정 바깥의 환경에 대한 관심을 떨어트렸다. '책을 읽어야 하니 바빠 친구들과 놀지 않겠다'라고 할 정도로, 영재성과 더불어 선천적으로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성격은 내 주변 환경을 더 좁게 만들었다. 나에게 주어진 주변 환경은 오직 집이 전부였고, 아마 그 집에서 나는 첫 발달 지연이 일어났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는 결과물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References

1) 인싸이트 심리검사 연구소, "Self-Concept Inventory - II 자아개념검사 II 해석 지침서"

2) 이사라, and 박성연. "부모의 양육행동 및 또래관계가 아동의 자아개념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종단적 연구." 아동학회지 22.4 (2001): 17-32.


이전 14화 13. 영재라서 그렇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