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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티스트 정혜연 Mar 21. 2023

파리지엔느와 히키코모리 그 사이 어딘가 Ep.02

02. 생존


그러하다,

나는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나의 유일한 스트레스 탈출구는 먹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 언어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공부를 해도 머리가 아픈 것이었고,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내 뇌는 한국에서와 달리 200퍼센트는 더 굴려야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듯했다.


빛나는 에펠탑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배가 더 고팠다.

메트로를 기다리는 동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듯했다. 이상하게도 프랑스에서는 배가 고프면 한순간에 머리가 핑핑 돌았다.

내가 항상 초콜릿을 악기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던 이유다. ​


집으로 돌아갈 때면 지하철 배차시간은 왜 이렇게 긴지, 초콜릿 하나를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고 집에 가서 무엇을 해먹을지 심각하게 고민한다.



​오늘 무엇을 먹을 것인지는 나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문제다.


오늘 하루도 먼 나라에서 이 고생을 했는데 식사를 대충 때우는 일은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유학 내내 자리 잡고 있었던 듯하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 나를 위로하던 노을


그렇게 나는 음식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물론, 맛있는 음식.​

한낱 유학생 신분으로는 매번 호화롭게 외식을 할 수는 없는 법.

나는 주방을 가까이했다.

“너 지금 한국인데 파리라고 거짓말하는 거지”

내가 한 요리들을 sns에 올리면 가장 자주 듣는 소리였다.

음식에 진심인 나는, 솔직히 한국에서보다 더 잘해먹었다.


유학 초창기의 음식들 (아직은 미미하다.)


솔직히 유학 생활을 하다 보면 나 같은 이들이 많은 듯했다. 모두가 본래의 모습보다 에너지를 더 많이 써야 하는 상황에서 살아가며, 이곳에서 목표하는 바를 이루고자 노력하며 급격히 소진되는 체력들.

마음 편히 이 나라의 아름다움을 즐기고도 싶지만, 유학생에게는 그마저도 사치라 느껴지는 어느 순간,

우리는 밥을 찾는다.


유학 초중반 몸이 안좋아 비건을 했던 시절. 엄마가 한국에서 보내준 건나물들로 요리를 했다.


파리는 아름답지만 우리는 연습을 해야 해​.

나의 첫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물론 바캉스에는 이 아름다움을 즐기렴, 단 연습은 게을리하지 말고!)​​


나는 파리의 맑은 날이 슬펐다.나는 어자피 연습실에 틀어박혀있어야 하니.


그 작은방에 틀어박혀 연습을 하고, 여기가 프랑스인지 한국인지 무인도인지 모를 시간을 거쳐가고, 그밖에 매 순간 언어의 장벽과 문화의 차이들을 받아쳐내며 살아가던 그때.


내 유일한 행복은 제대로 된 한 끼, 맛있는 밥을 나에게 선사하는 것이었다. ​



유학 생활에서의 식사란, 마치 이 삶에 대한 보상심리였달까. 아니면 생존 본능이었을 수도 있겠다.


유학 3-4년 차엔 치킨은 다들 기본으로 튀기잖아요?


한국에 돌아온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음식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다. 더 이상의 생존본능도 보상심리도 없이,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음식을 원하고 즐긴다. (그렇다고 삶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음식 외에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다른 존재 요소들이 좀 더 많지 않아서일까?

그렇지만 아직도 매일 밤, 내일은 뭐 먹지?라는 생각은 멈출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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