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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티스트 정혜연 Mar 22. 2023

파리지엔느와 히키코모리 그 사이 어딘가 Ep.03

03. 무식하면 용감하다.


내가 유학을 간 해는 2016년 9월이었다.

프랑스 학기는 한국과 달리 9월부터 시작됨으로, 그때쯤 가서 음악원 입시 시험을 보고 10월부터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은 입시 기간이 조금 바뀌었지만 저 때만 하더라도 입학시험을 이미 새 학기가 시작한 후에 보기 시작해, 합격을 하는 즉시 학교 수업에 투입(?)이 되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정신이 없고, 말 그대로 정말 ‘생존’의 시간이다. ​어쩌다 보니 급하게 나간 유학에, 언어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기에 더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프랑스는 입시 원서를 방문으로만 받는데, 원서를 넣으러 가면서 입시날 동선을 미리 체크한다. 미리 한번 다녀와보면 당일날 가는 길이 조금을 수월할 테니.


​그렇게 원서를 넣으러 프랑스 말메종에 갔을 때다. 지하철을 내려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버스 정류장에 티켓을 파는 곳이 없던 것이다.

내가 타야 하는 버스는 왔고, 버스 기사에게 티켓이 없다, 티켓을 어디서 사야 하나라고 물어봤는데 내가 정신없어하니 기사님이 그냥 타라고 무료로 태워주셨다.

알고 보니 티켓은 버스에서 기사님께 직접 살 수 있고 현금만 가능하다. 아마 2유로 정도 했던 것 같다.


​물론 이후에는 #나비고 (프랑스 교통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했다.


이렇게 원서를 넣으러 가며 이런 일을 한번 경험하고 나니 입시 시험 당일에는 문제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철저한 준비에도 이벤트는 꼭 있는 법.

다른 학교에 시험을 보러 가는 날, (물론 이 학교도 미리 다녀와 동선과 시간을 다 계획해 놨다) 악기 가방을 메고 지하철을 타고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다 메트로가 잠시 멈춰 서고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파리에 도착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나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그냥 안내방송이려니 하고 창밖을 쳐다보며 시험으로 긴장되는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그렇게 지하철은 다시 출발을 하고, 창밖의 풍경이 갑자기 바뀌는 것이다. 암흑 같은 차고지 같은 곳으로 들어가길래 놀래서 주위를 둘어보니 그 많던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서 일단 프랑스에 사는 아는 언니에게 전화를 하려 핸드폰을 들었지만, 역시나 프랑스, 통신이 아예 터지지 않는 것이다.

놀란 가슴에 발을 동동 거리다 보니 지하철이 정말 차고지에 멈춰 섰다. 나는 지하철 문을 두드리며 한국말로 “여기 사람 있어요!!”를 외쳤다. 잠시 후 기관사가 나오더니 깜짝 놀라며 너 왜 여기 있냐 하더라. 나는 거의 울듯한 표정으로 불어를 더듬거리며 나 돌아가야 해..라고 말을 했더니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기관사가 바뀌고 곧 돌아갈 것이라고 얘기했다.

우선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 자체에 안도가 되어 진정을 하고 내부에서 다시 출발하기만을 기다렸다.


입시 당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시험에 늦지는 않을까 시계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애타는 마음을 붙잡았다.

얼마 지나 메트로는 다시 출발을 했고, 다행히 예상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서둘러 나온 바람에 시험장에 단 1분을 남겨두고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구글맵을 열고 학교로 어찌나 달렸던지.. 목 끝까지 차오른 숨을 참고 바로 시험장에 들어가 연주를 했다.

정말 눈앞이 아찔한 하루였다.

지금 생각해도 왜 아무도 나에게 내려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나 아이러니하다.


유학이든 여행이든, 프랑스에 오면 다들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바로 에펠탑이다. 에펠탑을 보며 내가 진짜 파리에 왔구나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그러나 나는 스스로에게 ‘나는 공부를 하러 온 것이지, 놀러 온 것이 아니야’라고 나를 다그치며 살아왔다.

이런 나는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연습을 하고, 점심을 먹고 또 연습을 하고, 저녁을 먹고 10시까지 연습 후, 밤 12시까지 두 시간의 프랑스어 공부를 마치고 잠이 들었다. 이후 프랑스에 도착한 지 한 달 뒤, 학교 합격 소식을 들은 날 처음으로 에펠탑을 보러 갔다.

이 사진이 그날의 나의 첫 번째 에펠탑이다.

파리에 살았지만 살지 않았던 내가 한 달여 만에 만나는 그 유명한 에펠탑이란.

시원한 한숨이 나왔다.​


합격 소식을 들은 후 학교 앞 벤치에 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간 잘 지낸다며 웃으며 말하던 나는, 처음으로 엉엉 울었더란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입시의 힘듦은 앞으로 펼쳐질 프랑스 생활에서의 고난 앞엔 아무것도 아니더라.

그러나 돌아보면 스스로가 가장 대견한 시간이다.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한 아이가 혼자서 큰 짐가방을 이끌고 그 머나먼 땅으로 가, 도와주는 이 아무도 없이 홀로 모든 것을 알아보고 헤쳐나가며 살았던 그 시간.

오직 꿈만 보고 살았던 그 무식한 열정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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