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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티스트 정혜연 Mar 22. 2023

파리지엔느와 히키코모리 그 사이 어딘가 Ep.04

04. 병원살이 (1)


내 나이 19살, 12월 5일.

인생에 아주 큰 사고를 겪었다.

병원인 것 같은 곳에서 의사들의 다급함과 작은 아빠의 “엄마가 오고 있어. 괜찮아”라는 말이 보인다.

다음 장면은 엄마가 내 손을 붙잡고 울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줬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 면회를 와서 내 손을 잡고 또 운다.

어느 날 정신이 살짝 들었다.

중환자실이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입안에 혀를 움직여본다. 아래턱 앞니가 없다. 아, 이가 다 빠졌구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면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으로 침대 손잡이를 쳐댄다. 그러면 간호사가 왔다 갔고 이내 다시 잠이 든다.

나는 시력이 안 좋은데, 병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가 또렷이 보인다. 24시간 그 시계만 쳐다본다. 한두 시간이 흘렀나, 하고 보면 단 5분이 지나있다.


​점점 더 정신이 또렷해지고 극강의 두려움과 무서움이 밀려온다. 면회시간에만 볼 수 있는 엄마를 애타게 찾는다. 중환자실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잠을 잘 수도 없다. 중환자들의 공간에선 죽음의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대학 입시를 위해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며 레슨을 받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나는 인도에서 보행자 신고를 기다리다가 인도를 넘어온 커다란 스타렉스 차량에 치였다. (단기 기억상실로 사고 전후가 기억나지 않아, 경찰을 통해 들은 이야기다.)​


이가 다 빠진 줄 알았던 자리는 턱이 두 동강이 나서 벌어졌던 것이었다.

엄마가 급히 청주에서 올라왔고, 의사는 CT촬영을 해봤는데 뱃속이 다 피라서 어디가 다쳤는지 몰라, 일단 개복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는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내 소식을 듣고 응급실에 달려온 친구의 말에 의하면 내 입에서 장기가 나오는 줄 알았다더라.​


나는 췌장이 터졌고, 다행히도 수술을 잘 마쳤다. 그렇게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어느 정도 장기의 회복이 보인 후, 다른 수술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나갔다.

바스러진 팔꿈치와 부러진 정강이, 턱 수술까지..

턱은 양 옆 또한 모두 깨졌는데 수술이 위험해서 할 수 없었다. 결국 위아래 잇몸에 나사를 박고 고무줄로 묶어놔 뼈에서 진이 나와 붙길 기다렸다.

그렇게 나의 대학 입시도 끝이 났다.

다행히 모든 분야의 최고의 의사 선생님들을 만나 모든 수술이 다 잘되었고, 긴 물리치료 끝에 나의 바스러진 턱도 다시 악기를 함에 문제가 없이 좋아졌다. 물론 이 모든 일을 옆에서 겪고 나의 똥기저귀를 갈아주며 직접 간병을 한 엄마가 있었기에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세상에 나왔다.

대학은 물거품이 되고 온몸이 여전히 아프다. 슬픔보다는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악기는 이내 곧 다시 잡았지만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프랑스 리옹에서의 음악 캠프 소식을 들었다. 나의 동굴을 본 엄마는 이곳의 힘듦을 다 털어내고 새로운 환경에서 바람을 쐬고 오라며 리옹으로 보내줬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어서 비행도 걱정되고 플루트 연습과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선생님과 친구들부터 함께 한 모든 이들의 배려로 건강히 다녀올 수 있었다.

사실 모든 것을 털어버리려고 간 곳인데, 오히려 악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남들은 다 밤새 연습하며 연주하고 선생님들께

칭찬을 받는 모습을 보며 나만 뒤처진 것 같아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하기 싫던 악기가 다시 너무나도 잘하고 싶어졌다.

매일 저녁 교수 추천의 학생들이 무대에서 연주를 했는데 마지막 날, 선생님의 추천으로 무대에 섰다. 아직 연주는 택도 없는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냈다. 그러나 역시는 역시. 무대를 내려오는 순간부터 숙소에 가는 길 내내 속상함에 눈물이 났다.


​너무 창피했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두가 너의 건강상태를 알고 있기에 네가 잘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다시 한번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오지 않은 것만 해도 대견하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무기력함은커녕, 음악에 대한 열의가 커져서 돌아왔다. 다시 마음을 잡고 입시 준비를 하고 악기를 마주할 용기가 비로소 생겼던 것이다.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접근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김영하 - 여행의 이유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서 발췌한 글이다.

너무나도 공감한다. 그리고 실제로 경험했다.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로 인해 몸과 정신이 망가짐은 물론, 졸지에 재수생이 됐다. 성치 않은 몸으로 입시를 하자니 무너짐의 연속이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우울의 숲으로만 걸어 들어간다.

그러다 프랑스 리옹에 갔을 때, 모든 것이 낯설었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모르는 이들과 일주일을 먹고 자고 하며 보냈다. 오직 음악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당장 오늘 해야 할 연습이 있고, 그다음 일정들이 있다. 매일같이 프랑스 대가들에게 레슨을 받았다. 하나라도 더 얻고 싶었다.

오로지 현재를 살았다.

그리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덜어내고 음악으로 모든 감각을 깨웠다.

그렇게 나는 다시 살아갔다.​


삼수 끝에 대학에 붙었다. 긴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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