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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티스트 정혜연 Mar 22. 2023

파리지엔느와 히키코모리 그 사이 어딘가 Ep.05

05. 병원살이 (2)


대학을 졸업하고 한창 유학을 준비하던 시기, 어느 날 감기에 심하게 걸렸다. 아무리 약을 먹고 응급실까지 가봤지만 고열이 잡히지 않았다.


응급실에선 신우신염 같다며 산부인과를 추천했다. 그러나 입원 3일 차 계속해서 열이 떨어지지 않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두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부인과에선 이쪽 질환이 아닌 것 같다며 당장 3차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종합병원으로 옮겨져서 간단히 검사를 받고 다인실 입원실에 누워있었다.


갑자기 의사와 간호사분들이 마스크를 쓰고 급히 왔다. 지금 당장 격리실로 옮겨야 한다고.

호중구 수치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호중구는 백혈구 종류 중 하나로, 면역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쉽게 말해, 몸에 세균이 들어오면 그들과 실제적으로 싸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 호중구다.


호중구 정상수치는 성인 기준 1800-7000 /μL이다. 나의 수치는 180대로 매우 심각한 중증(< 500 /μL) 상태였다.

이 정도 상태면, 아주 약한 감기 바이러스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그 즉시 나는 격리에 들어갔다. 매일 아침 피를 뽑아 검사를 하고, 골수 검사 외의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다 해봤지만 나아지지 않은 채 몇 주가 흘렀다.


그 와중에 유학을 위한 수순인, 대사관 면접이 잡혀있었다. 참고로 파리로 가는 비행기는 산부인과에서 예약을 했고, 격리 중인 와중에 아빠와 함께 면접을 보러 대사관에 다녀왔다.


그만큼 유학길에 오르는 망설임은 전혀 없었다.


병원에서는 원인불명열로 인한 호중구저하증으로 판단했다. 최악의 경우 급성백혈병일 수 있기에 우리나라에서 백혈병으로 가장 유명하다는 서울성모병원으로 전원 했다.


이미 한 달간의 고열을 앓은 나는 700대까지 호중구가 오른 상태였고, 오르고 있으니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다. 서울성모병원 교수님은 원인을 스트레스로 꼽았다.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으세요?

네, 유학준비가 만만치 않네요.


가기 전부터 호된 신고식을 치른 듯했다.

유학 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건강체질인 사람들도 유학을 다녀오면 온몸이 망가진다, 그런데 원래도 이렇게 약한 애가 어떻게 가려고 하니.

그러나 나에게 다른 플랜은 없었다.

가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나는 그냥 가는 것이다.

한 달 뒤, 어느 정도 회복을 하고 프랑스로 떠났다.

돌아오는 티켓은 없다.

편도 티켓 한 장으로 나의 유학길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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