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사람 옆에서 일하는 사람

뺀질이와의 비행

by 구름 위 기록자

오늘 비행은 오랜만에 한숨을 깊게 쉬며 일한 날이었다.


퍼스트클래스에서 함께 일하는 크루들은 대부분 연차가 꽤 찬 사람들이다.
늘 손은 빠르고, 동선은 몸에 배어 있고,
눈을 감아도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래서 퍼스트클래스에서는 대체로 큰 드라마가 일어나지 않는다.
각자의 몫을 묵묵히 해내고,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런데 오늘은 시작부터 어딘가 삐걱거렸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분명했다.
단 한 사람 때문이었다.


느리거나 서툰 건 괜찮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우리는 늘 그렇게 맞춰가며 일해왔다.
하지만 오늘의 문제는 ‘미숙함’이 아니었다.
그는 매 순간, 어떻게 하면 덜 일할 수 있을지를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동선은 늘 그를 중심으로 어그러졌고,
그가 비운 자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누군가가 채웠다.
그리고 늘 그렇듯, 그를 대신해 주는 사람은 있었다.
그래서 서비스 전쟁 속에서도 그는 유독 여유로워 보였다.


그가 승객들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가 준비한 그가 서비스해야 할 딜리버리 음식은
그의 손을 기다리며 조용히 식어가고 있었다.

결국 그 상황을 정리하고,
잔소리를 남겨야 했던 사람은 나였다.


예전의 나라면 아마 바로 부딪혔을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의 경험이 나를 멈춰 세웠다.
'절대 먼저 들이박지 말 것.'
우리는 앞으로도 14시간을 더 함께 비행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농담을 섞어,
달래듯 그의 몫을 다시 건네고 하나씩 알려줬다.
그때 그의 표정은 꼭 잔소리를 듣는 아이 같았다.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말 안 해도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는 안다”라고.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만 ‘참을 인’을 새겼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이 비행에서 어떤 태도로 일할 사람인지.
그리고 나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그는 나름의 생존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승객들에게 다가가
이 비행이 어땠는지를 묻고,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짧은 코멘트를 종이에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언젠가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놓이면
꺼내 들 수 있도록.


일은 어찌어찌했고,
결코 성실하지는 않았지만,
승객은 자신에게 만족했다는 증거도 남겼다.

하지만 모두는 알고 있었다.
그가 일하지 않은 매 순간을,
그 공백을 누가 채웠는지를.


그는 또 정확히 강강약약이었다.
관리자가 지켜보는 앞에서는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시선이 사라지면 다시 한없이 흐트러졌다.
그래서 아무리 조목조목 설명해도
결국 상처받는 건 내 감정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행히 그 비행에는
서로를 이해해 주는 다른 크루들이 있었다.
말없이 눈을 마주치며
“나도 봤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
그 덕분에 우리는 더 끈끈해졌고,
성실한 사람들끼리는 더 단단해졌다.


하지만 비행이 끝난 뒤에도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가 남긴 부정적인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 후유증처럼 남았다.
더 괘씸했던 건,
그가 승진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왜 저런 사람이 올라가는 걸까.
삶은 정말 이렇게 불공평한 걸까.
생각할수록 마음은 어두워졌다.


착륙 후에도 나는 그 질문을 놓지 못했다.
개미와 베짱이, 토끼와 거북이 같은 이야기를 떠올려봐도
지금의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달콤한 카라멜 라떼를 마셔도,
좋아하는 노래를 들어도
마음의 끝은 늘 같은 질문으로 돌아왔다.
왜.


괜히 지인들에게 투정을 부렸다.
왜 성실한 사람이 늘 더 참고,
더 감당해야 하느냐고.
“어쩌면 약은 것도 인생의 기술”이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가 배우고 싶은 기술이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배우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긴 무명 끝에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된 사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가 너무 운이 좋아서 잘됐다고 느껴진다면,
앞으로는 그 운 좋은 사람 옆에 머물 줄 아는 눈을 가지라고.
그리고 그 운은 늘 성실하게 자기 몫을 해내는 사람 곁으로 온다고.


그 말을 읽는 순간,
나의 시선을 조금 달리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어쩌면 그 동료는
다른 의미로 정말 운이 억수로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저 뺀질거림에도 잘 넘어왔고,
지금은 승진을 앞두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그 운이 좋은 사람과 같은 비행을 한 셈이고,
그 운의 기운을 받은 셈이다.
그리고 나의 기본값은 여전히 성실이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성실히 열심히 하는 것이니까.


이제 그 운은 나에게로 오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에 대한 험담은 아무리 해도 해도
마음을 결코 편하게 만들지 못했는데,
이 해석은 나를 조금 자유롭게 했다.
내 방식대로 감정을 소화한 셈이었다.


물론 나는 그에게서
뺀질함을 배울 생각은 결코 없다.
하지만 오늘의 비행을 통해
언젠가 내가 리더가 되었을 때,
일하지 않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내 기준을 지킬 수 있는지를 배웠다.


나는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을 위하고,
뺀질한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는 눈까지
얻게 되었다.


결코 그 뺀질함이
성실함을 이기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걸
오늘 비행에서 다시 확인했다.


이런 배움은
회사라는 조직,
사람 사이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승진은 늦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믿는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나를 잃지 않는 방법이니까.


언젠가 성실은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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