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헛기침이 가라앉은 공연장.
정적을 깨는 건 단 하나의 스네어드럼 소리였다.
그 위에 플루트가 얹히고, 또 하나씩 악기가 더해진다.
단순한 반복 같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기대를 키운다.
그렇게 볼레로는 시작된다.
엄마가 선물해준 클래식 카세트테이프의 마지막 트랙이 바로 볼레로였다.
다른 곡들은 5분 남짓이었는데, 이 곡은 무려 15분.
어린 나이에 그 긴 반복을 끝까지 듣기란 쉽지 않았다.
선율은 한없이 이어지고, 마지막엔 무너져 내리듯 사라진다.
특히 탐탐과 심벌즈가 터질 때면 소리가 너무 커서 볼륨을 줄이기도 했다.
그래서 클래식을 좋아하면서도, 이상하게 볼레로만은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늘 비껴 있었다.
한겨울, 16시간의 긴 비행 끝에 도착한 오클랜드.
우연히 주어진 3일의 레이오버, 특별한 계획도 없이 걷다 눈에 띈 시청 앞 공연 안내판.
오늘의 공연, 라벨의 볼레로.
시간도 많겠다 싶어 가볍게 티켓을 샀다.
“지루하지나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2층 객석에 앉았다.
그리고 시작된 연주.
어릴 적 귀에 익은 바로 그 스네어드럼이 다시 울렸다.
눈앞의 장면은 내가 알던 볼레로와 전혀 달랐다.
바이올린 주자들이 현을 손가락으로 뜯어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1928년에 이미 이런 시도를 했다니, 라벨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스피커로만 듣던 음악과, 눈앞에서 펼쳐지는 오케스트라는 완전히 달랐다.
수많은 악기가 차례차례 등장해 독주처럼 자기 목소리를 내고, 곧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 되었다.
색소폰은 재즈를 닮은 자유로움을 뿜어내며 클래식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리고 15분 동안 흔들림 없이 같은 리듬을 이어간 스네어드럼 주자.
그의 땀방울이 이 곡 전체를 지탱했다는 걸 객석의 모두가 알았다.
가장 뜨거운 박수는 결국 그에게 돌아갔다.
작은 음에서 시작해 거대한 합주로 터져 나오고, 다시 무너져 0으로 돌아가는 흐름.
어쩌면 라벨은 그 과정을 통해 우리 삶을 보여주려 했던 건 아닐까.
각자의 색이 모여야 하나의 작품이 되고,
지루해 보이는 반복이야말로 가장 큰 환희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공연장을 나와 맞은 겨울바람은 차갑지 않았다.
내 마음에는 여전히 뜨겁게 연주되던 열기와 황홀감이 남아 있었으니까.
끝없는 반복 끝에 찾아온 절정, 그것이 내게 가르쳐준 건 지루한 인내가
결국 가장 큰 환희로 변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문득, 나는 엉뚱한 생각에 웃음이 났다.
스네어드럼 주자는 이 곡을 좋아할까, 아니면 싫어할까?
https://youtu.be/_ej61TDC5L8?si=LPWX1qXTd1v9A4V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