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기도 전에, 할로윈 시즌이 끝나자마자 상점들의 매대는 크리스마스로 채워진다.
이 풍경은 더 이상 유럽이나 미주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중동, 두바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두바이에서 크리스마스는 꽤 조용했다.
간간히 호텔에서 외국인 거주자(EXPAT)을 위한 브런치가 열리긴 했지만,
매대 한복판에서 트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너도나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고,
아바야를 입은 아라빅들이 트리 앞에서 오너먼트를 고르며 설레한다.
내 옆에서 나보다 더 진지한 얼굴로 장식을 고르던 그들의 손에는
‘Happy Merry Christmas’라고 적힌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지만 참 인상이 깊다.
어쩌면 이제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
모두가 연말까지 버텨온 자신을 토닥여 주는 방식이 된 건 아닐까 싶다.
한 해를 살아야 했던 이유,
이 나라에서 일해야 했던 이유,
그리고 버텨낸 날들에 대한 이유들.
그 모든 것들을
반짝이는 트리 앞에서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연휴라고 생각한다.
가장 어두운 계절에
트리가 더 밝게 빛나는 이유는
각자의 마음이 트리 앞에서 함께 빛나기 때문이 아닐까.
어릴 적 나는,
일 년 동안 말 잘 듣고 착한 아이가 되면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산타가 진짜든 아니든,
그 믿음만으로도 나는 잘 지내왔다는 증명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어른들은 어땠을까.
아이들 선물을 고르느라 머리를 싸매기도 했겠지만,
선물을 포장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따뜻해졌을 것이다.
내 크리스마스의 기억은
가족과 맛있는 걸 먹고, 엄마 손을 잡고 성당에 가던 날들이다.
사실, 예수님의 탄생을 깊이 이해했다기보다는
성당에 서 있던 커다란 트리를 구경하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성탄 음악이 울려 퍼지던 그 분위기가 참 좋았던 기억이다.
그 시절에는
거리 곳곳에서는 캐롤이 흘러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저작권 때문에 머라이어 캐리가 뒤로 넘어갈 일이지만,
그땐 그런 걱정이 없었다.
그 노래들이 들리면
아, 이제 연말이구나 싶었고
반짝이는 장식들만 봐도 괜히 마음이 들떴다.
구세군은 산타 복장을 하고 종을 쳤고,
크리스마스 씰과 동전 모으기는
‘다 같이 조금 더 따뜻해지자’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산타를 믿지 않고,
거리에서 캐럴을 듣기도 어렵다.
크리스마스에 쉬지 못하는 직업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에는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버거워
크리스마스가 위로가 되지 않던 해도 있었다.
설렘이 클수록, 외로움도 더 짙어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얼마 전,
부산의 ‘크리스마스 버스’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버스를 크리스마스 버전으로 꾸며 운행하던 기사님 이야기였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낭만이 불편함이 되었고,
결국 올해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내린 채 운행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누군가의 설렘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이 되는 순간.
그 기사가 유난히 마음에 씁쓸하게 남았다.
두바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의 동심을 위해
동네 엄마들이 돈을 모아 산타를 부르는 문화.
산타 역시 경쟁이 치열하다.
아이들이 동화에서 보아온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영어권의 흰 피부의 산타가 가장 비싸다.
가격 차이는 두 배가 넘기도 한다.
재작년, 한 친구는 결국
동남아에서 온 산타를 불렀다고 했다.
풍채 좋고 하얀 수염의 산타를 기대했던 아이는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웃어넘기기엔 조금 묘한 이야기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크리스마스가 완전히 낭만을 잃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트리 앞에서 아직 설레는 사람도 있고,
한 해를 무사히 넘긴 것만으로
자신을 다독이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산타를 믿지 않게 된 이후에도,
이 계절이 사람들 마음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건
어쩌면 우리가 여전히 이 계절과 함께
조금 더 따뜻해지고 싶어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즐길 필요는 없지만,
이 계절에서 만큼은
서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기를.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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