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에서 두 번의 새해를 건너며

by 구름 위 기록자

이번 2025년의 마지막 비행은 유난히 특별했다.
12월 31일 밤 10시쯤, 인천을 출발해
1월 1일 새벽 3시, 두바이에 도착하는 일정.


시간 위를 미끄러지듯 건너
한 해의 끝과 새해의 시작을

한 번의 비행으로 통과하는 날이었다.


퍼스트 클래스에는
12월을 한국에서 보내고 두바이로 돌아가는
아라빅 승객들이 대부분이었다.
보딩부터 새해 모자와 장식품,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서로의 얼굴을 남기며
아직 오지 않은 새해를 먼저 맞이하고 있었다.


“Happy New Year!”


아직 시작되지 않은 새해였지만,
그들은 우리와 함께
비행기 안에서 새해를 맞을 예정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과
새해의 첫출발을
같은 공간에서 공유하는 셈이었다.


그들의 눈은
다가올 한 해를 기대하는 것처럼 반짝였고,
그 반짝임은 퍼스트 클래스에만 머물지 않았다.
다른 캐빈에서도,
그들을 맞이하는 모든 크루의 눈에서도
같은 빛이 느껴졌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창밖에는 간간이 별빛만 보일 뿐
짙은 어둠이 이어졌다.
늦은 출발 시간 탓에
기내에 승객은 하나둘 잠에 들었고,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한국에서 사 온 새해 연하장을 꺼냈다.


한 해 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람들,
도움을 받았던 크루들을 떠올리며
카드를 한 장씩 적어 내려갔다.

연말이면 늘 반복하는 나만의 리추얼이다.


덕분에 잘 지나왔다고,
고마웠다고, 다가올 한 해에는
행복과 건강이 가득하길 바란다고.

작은 문장들이 그들에게는 행운의 부적이 되기를 바라며.


신기하게도
매년 비슷했던 이름들 대신
이번에는 처음 만난 크루들의 사번으로
카드가 채워졌다.

이미 인사를 나눈 가까운 사람들도 있지만,
새로운 이름들을 적어 내려가며
올해도 참 좋은 인연들을 만났다는 사실에
내 마음이 먼저 따뜻해졌다.


늘 쓰면서 느끼지만,
이 리추얼은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 해를 잘 건너온 나에게, 그리고 함께 건너온 사람들에게 조용히 등을 토닥이는 시간.


서비스 중, 칵핏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밤 비행이라 커피 요청인가 싶어 받았는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말은 뜻밖에도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아요.”


한국의 새해가 막 시작된 순간에 맞춰
외국인 기장님이 일부러 전화를 주셨다고 했다.
조금 어색하고 서툰 한국어였지만,
그 너머로 새해의 좋은 기운은 충분히 전해졌다.


그리고 몇 시간이 흐른 뒤,
이번에는 두바이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아직 잠들지 않은 승객들에게
연말의 위로와 새해의 안녕을 전하며
목테일을 건넸다.
그리고 함께 숫자를 세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 번의 비행으로
두 개의 해를 건너왔다.

서로의 속도도, 위치도, 지나온 풍경도 모두 달랐겠지만
한 해를 떠나보내고 새 출발을 기대하는 마음만큼은
같은 고도에 있지 않을까.


착륙 후에도,
늘 듣던 기내 방송이 끝난 뒤에도,
크루들과 헤어지는 순간에도
“Happy New Year”라는 인사는
공기처럼 퍼져, 한동안 기내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마치 이번 한 해도
모두에게 잘 흘러갈 거라고
따뜻한 진심이 공기 속에 스며든 것처럼.


나는 이 새해의 바이브가 참 좋다.
하늘 위에서 두 번의 새해를 건너온 덕분에
더 선명하게.


2026년 두 번의 새해를 맞이했다. 서울의 2026년 그리고 아부다비의 2026년 새해 /

아부다비는 무려 이번 연도에 62분 동안 새해폭죽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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