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자의 번아웃, 그리고 회복
‘선배님…’
같은 비행에서 일하던 후배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오랜만에 비행에서 마주친 한국인 후배였기에, 그 한마디가 반갑고 고마웠다.
자신은 비행을 시작한 지 3개월쯤 되었다고 했다.
“비행은 어때요? 할 만해요?”
안부처럼 건넨 내 질문이 마치 기다렸다는 신호처럼 그녀의 말문을 열게 했다.
비행이 재미는 있지만, 늘 만석 비행에 너무 지친다고 했다.
성수기, 비수기 상관없이 꽉 찬 비행.
400명 넘는 승객을 케어해야 하는 이코노미 클래스 특성상 너무나도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맞아요, 너무 바쁘죠.
그럴수록 건강 꼭 챙기셔야 해요. 그래야 재밌게 오래 할 수 있어요.”
짧게나마 그녀의 지침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내가 “비행한 지 10년 됐어요”라고 하자,
그녀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오래 할 수 있어요?”
나는 “건강이요”라고 대답했다.
그 10년을 버티게 해 준 것도, 앞으로 계속하고 싶게 만드는 것도 결국 ‘건강’이었다.
나는 가방에 늘 가지고 다니는 홍삼 하나를 그녀 손에 꼭 쥐어주었다.
길게 말하면 괜히 꼰대 같을까 싶어 웃으며 넘겼지만,
사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건강’의 중요성을 느껴왔다.
비행을 하다 보면 수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감정노동이 큰 직업이다 보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결과, 번아웃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나 역시 비행을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 무렵, 큰 슬럼프를 겪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인도 ‘턴’(Turn) 비행.
도착 후 쉬지 않고 곧바로 다시 출발하는 고강도 일정이었다.
그날은 승객도 꽉 찬 비행이었고, 모두가 무언가를 원했다.
그걸 다 충족시키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정말 정신없는 하루였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착륙 후, 문 옆에서 “Goodbye, Farewell” 인사를 해야 했는데
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승객들의 눈을 마주하는 것조차 버거웠고, 그 시선들이 갑자기 두렵게 느껴졌다.
결국, 맞은편에 서 있던 동료에게
“문 좀 대신 봐줘요”라고 부탁하고는 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잠시라도 혼자 숨을 고르고 싶었다.
그 이후 몇 달간은 착륙 후 인사하는 그 순간이 늘 부담스러웠다.
‘내가 지금, 건강하지 못하구나.’
정신적으로. 정말 그렇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감정을 방치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승객의 불쾌한 말이나 무리한 요구, 상사의 날 선 피드백이 쌓일수록
나는 속으로 분노했고, 그 화는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향하곤 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불만이 많은 사람이 되어갔고,
결국 그 화에 잠식되고 있었다.
그 중심에서,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말했다.
“요즘 너,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아.”
그 말을 들으며 깨달았다.
나는 늘 타인의 감정을 돌보느라 정작 내 감정은 돌보지 않고 있었구나.
내가 좋아서 시작했던 이 일이
언젠가부터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후로 나는 ‘내 감정 다루기’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루하루의 나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나 자신을 어루만지는 법을 익혀갔다.
그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이 바로 글쓰기, 기록이었다.
“제법, 나는 내 기분을 잘 돌본다는 걸 느꼈다.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내 기분을 찬찬히 살핀다.
어떤 음악이 오늘 내 기분을 나아지게 했는지,
어떤 향이, 어떤 말이, 어떤 글이 나를 살렸는지.
글을 쓰며 나는 오늘의 감정에게 묻는다.
괜찮은지, 편안한지, 그리고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그렇게 나는 나의 슬럼프를 극복했고,
지금은 다시 이 일을 *‘좋아하는 나’*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느덧, 그렇게 10년이 되었다.
나는 오늘도 하늘 위에서 다시 나의 속도를 찾아간다.
감정을 흘려보내는 법을,
스스로를 다정히 안아주는 법을 배워가며
오늘도 나와 함께 비행 중이다.
그 모든 순간들이 말해준다.
나는 여전히 이 일을, 이 삶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