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가족, 부모님에게
비행을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 그리고 긴 외국생활,
어느 순간부터, 한국보다 외국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직업적으로 나는 ‘외항사 승무원’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지만,
가끔은 나라는 사람이 어디쯤 서 있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질문 하나.
“나는 과연 효녀일까, 불효녀일까?”
해외에서 지내는 동안, 이 질문엔 단 한 번도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가족의 생일, 명절, 소소한 모임들.
곁에서 챙기지 못한 날들이 너무 많다.
나는 언제나 또 다른 하늘로 날아가 있었고,
도착했다는 짧은 문자와 안부 인사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내 자리를 이해해 주는 가족들.
그 너그러움이 고맙고, 그래서 더 미안하다.
문득, 어린 시절.
부모님이 출근하며 나를 두고 나서던 그 마음이 이랬을까, 생각해 본다.
가장 두려운 건, 부모님이 나를 필요로 하실 때 내가 곁에 없을까 봐 생기는 공포다.
한 번은 엄마가 스마트폰 사용법을 물으셨다.
그 질문이 나에게는 두려움처럼 다가왔던 걸까.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왜 이것도 몰라?”라는 말은 상처가 되어 남았고,
나는 그 사소한 일조차 도와드릴 수 없는 스스로가 미웠다.
늘 비행에서 지칠 때면 부모님께 투정을 부렸다.
그런데 내가 받은 건, 언제나 ‘물마중’이었다.
김창옥 작가가 했던 말이 있다.
오랜 시간 물질을 하고 나온 해녀가 지쳐 육지에 오를 때,
그 앞에서 망사리를 같이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그 손길을 ‘물마중’이라 부른다.
“아유, 수고했어. 손 떠는 것 좀 봐. 쉬어, 쉬어.”
그 말 한마디, 그 손길 하나가
기진맥진한 해녀의 피를 다시 뜨겁게 만든다고 했다.
내 인생의 물마중은, 늘 부모님이었다.
비행 후 전화하면 늘 다정한 말로 나를 맞아주었고,
삶이 힘겨울 땐 조용히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 손길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차가운 바다 같은 세상에 잠겨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사랑은 나를 수백 번, 수천 번
다시 바다 같은 하늘로 떠나게 해 줬다.
그런데도, 내 망사리에 진귀한 해산물 하나 없을까 봐
마음 한편이 쓰리고 늘 미안하다.
승무원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비행기 태워드리는 일.
두바이에 모시고 오면 부모님은 늘 말씀하신다.
“덕분에 좋은 구경 했다. 고맙다.”
그럴 땐 잠깐 ‘효녀’가 된 듯 뿌듯하지만,
돌아가시는 뒷모습을 보면
다시 ‘불효녀’가 된 것처럼 마음 한편이 시리다.
이 마음은,
아마도 해외에 있는 한, 이 마음을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한 번은 아빠의 친구분께서 아빠에게 전화를 하셨다.
자제분이 우리 항공사에 입사했다며, 혹시 만나면 잘 챙겨달라고.
나는 CEO도, 대단한 선배도 아니지만
그 부탁이 왠지 우리 아빠가 나를 생각할 때의 마음 같아서,
조용히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야간 비행에 마시기 좋도록 커피 바우처 하나를 함께 전했다.
그녀 역시 긴 하루 끝에
누군가의 물마중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숨이 차오르면,
그녀의 아버지의 사랑으로 다시 숨을 고르게 되기를.
나는 다른 딸들처럼 살가운 성격은 아니어서
툭툭 말을 던진 적도 많다.
아마 나는,
내 물마중이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거라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제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나를 위해 기다려줘서 고맙다며
나 역시 그 손을 꼭 잡아줘야겠다.
물속에서 버티는 나 못지않게,
물 밖에서 기다리는 그 손도 지치고 외로울 테니까.
그들이 알아줬으면.
그리고 다른 말보다-
사랑한다고.
하루의 끝에 이 글을 마주한 당신에게,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혹시 아직,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면-
이 문장 하나가 당신의 물마중이 되길.
지금, 괜찮습니다.
쉬어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