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술에 취한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눈물이 흘렀다.
왜일까.
멀어져 가는 인간관계에 실망해서였을까.
아니면 손에 들고 있던 <인간실격> 때문이었을까.
그 책을 빌려준 친구는 말했다.
“이 책, 조금 어두워. 마음이 이상해질지도 몰라.”
그 말처럼, 책은 무거웠다.
하지만 더 무거웠던 건,
그 속에서 내가 나의 과거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 우울감과 긴장감을 숨기고 또 숨긴 채
그저 천진난만한 낙천가인 척 가장하면서
저는 익살스럽고 약간은 별난 아이로 점차 완성되어 갔습니다.”
그 문장에서 나는 멈췄다.
익숙했다.
어린 시절의 나도 그랬다.
어쩌면 나는, 관심을 받고 싶어서
익살스러운 사람이 되려 애썼는지도 모른다.
내 일은 잊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더 크게 웃게 했고, 더 많이 양보하게 했다.
“괜찮아.”
“미안해.”
그 말들을 자주 입에 달고 살았다.
내 잘못이 아니어도, 누군가 기분이 상하면 그건 내 탓 같았다.
한 번은, 불편한 농담에도 억지로 웃은 적이 있었다.
그저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도록.
상대가 나를 불편해하지 않도록.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았을 때
나는 웃고 있지 않았다.
그건 내가 나를 외면한 하루였다.
내 어깨는 자주 굳어 있었다.
남의 표정을 먼저 살피고,
내 감정보다 타인의 기분을 더 신경 쓰던 나날들.
그게 누적되자 나는 점점 단단해졌고,
조금씩 나를 잃어갔다.
그리고 내 안엔 늘 누군가의 눈빛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웃었고, 괜찮다고 말했고,
미안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다.
그러다 문득, 나를 섬에 비유하게 되었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외로운 섬.
나 자신을 잃어가며 지었던 우스꽝스러운 웃음들.
그건 누군가 내 섬에 다가와주기를 바라는 몸짓이었을까.
그 손짓은 허공을 향했고,
마치 대양 속 등대처럼 외로웠다.
빛나면 빛날수록, 더 공허해졌다.
허지웅 작가는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섬에서 살아간다. 간혹 그 섬들이 가까워지는 순간이 있을 뿐이다.”
그 문장을 읽고, 나는 오래도록 생각했다.
내 섬은 외로웠다.
그게 내가 오래도록 믿어왔던 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내 섬 안에는 사계절이 있고,
날씨에 따라 변하는 파도의 높이도 있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깊이도 있었다.
나는 다른 섬과의 거리에 따라 존재가 정의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섬은 그저 섬이듯,
나도 그 안에서
조용히, 천천히, 나를 빚어온 사람이었다.
타인의 시선은 결국
나를 완성하지 않는다는 걸 가슴 깊이 받아들이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나는 지금도 가끔 외롭다.
여전히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고,
혼자라는 감정에 눌릴 때가 있다.
하지만 예전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제는, 외로움을 감추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다.
나에게 찾아오는 외로움은
한낮의 섬에 부는 바람 같다.
그건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일깨워주는 감각이다.
섬은 스스로를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자신만의 사계절을 품고 존재할 뿐이다.
이제 나는 그 섬 안에서 나를 이해하고,
나를 이루는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며, 소중히 하고
조용히, 스스로가 더욱 견고하게 될 수 있도록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익살을 가장해 웃고 있었던 날들.
누군가 내 섬에 닿기를 기다렸던 시간들.
그리고 이제는, 조용히 내 안의 바람과 사계절을 감싸 안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