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내가 이상한 걸까
한 달 전부터였다. 우리 집을 포함해 같은 도로 선상 이 일대 주택가 바닥에 알 수 없는 표식이 그려지고, 잔디 곳곳에 작은 깃발들이 꽂히기 시작한 것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심어주었다. 이것이 확신으로 바뀐 건 오늘 아침이었다. 형광 조끼를 입은 인부들이 들이닥쳐 우리 집 앞마당 잔디를 거침없이 삽으로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궁금증을 못 이긴채 다가가 "지금 무슨 작업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라고 물었지만, 서툰 내 영어를 잘 못 알아들은 것 때문인지 그들은 짧게 "티모빌(T-Mobile)"이라고만 반복했다. 나는 컴캐스트 사용자라 상관없지 않냐고 되물었으나,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이로써 나는 단지 '알았다'라는 말 밖에 던질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집으로 들어와 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답은 명쾌했다. 광통신망(fiber-optic network) 설치 작업 때문이란다. 시청과 단지(Subdivision) 측의 허가를 받은 공적 작업이니, 내 집 앞마당일지라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작업이 끝나면 잔디를 원상 복구할 책임이 그들에게 있고, 혹시 복구가 미흡하면 시청에 신고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심란한 마음을 달래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업이 끝나면 집의 가치가 더 올라갈 것"이라는 조언이었다. 그리고 '우리 집은 다른 집들보다 여러 군데 더 파둬버려 보기가 좀 그렇다'라고 하는 말에는 우리 집이 허브(hub) 역할을 할 수 있는 긍정적 신호라는 답변까지 해준다. 내가 이 네트워크에 가입된 유무를 떠나서 말이다. 아무튼 미국 전역에서 진행되는 인프라 구축의 과정이니, 나만 겪는 불운이 아니라 다 같이 참아주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한국적인 사고방식이 깊게 뿌리 박힌 부모님께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 설명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두 분 중 한 분이 "누가 남의 소중한 잔디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놨냐"며 화부터 덥석 내실 것만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다. 오후 시간인 지금은 90 퍼센트 넘게 잔디들이 복구되고 그 사람들은 이미 철수한 상태인데 '엉망으로 만들어놓았다'라는 말씀은 잠깐 하셨다.
이렇듯 잔디가 파헤쳐지는 풍경 속에서 나는 미국 주택 관리의 어려움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낀다. 게다가 차고 문의 줄이 갑자기 떨어져서 지금은 또 문을 아예 열 수 없어 고치는 아저씨 내일 오시라 부른 상태. 오늘은 여러 모로 뭐가 잘 안 되고 마음마저 심란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