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으로 나 자신과 싸운 하루

안 좋은 습관인걸 알면서도 단번에 떨쳐내기 힘드네요

by 바로코

사실 나는 십 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조현병을 앓고 있다. 꾸준한 정기검진과 약물치료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번듯한 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여러 증상들이 있지만 초반에 심했던 환청이나 환각 현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대신 나의 앞에 놓인 어떤 특정 상황에 대하여 극도로 불안해하고 지나치게 염려하며 걱정하는 경향이 다른 사람들보다 심한 편이다.


오늘도 한 가지 해프닝이 있어났다. 사실 지나고 나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는지라 딱히 기록할 마음은 없었는데 그래도 일상 속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보니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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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동생에게서 톡이 왔다. 택배 오면 좀 들여 넣어달라는 거였다. 그래서 당연히 오케이 답과 함께 아침 일찍 못했던 짧은 인사말도 남겼다.



그리고 열한 시쯤에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UPS 택배차가 우리 집 앞에 멈춰 선 거였다. 나는 당연히 동생 건 줄 알고 받았다. 그런데 이름을 보니 어머니 성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동생이 엄마를 위해 뭐 주문했었구나 이렇게 결론짓고 밥을 마저 다 먹었다.




그리고 동생이 준 UPS tracking number를 넣으니 on the way가 마지막 상태였고, 미국 우체부가 최종 배달해 준다고 USPS tracking number로 연결되는 버튼 같은 게 보였다. 그래서 우체국 웹사이트에서의 조회는 out for delivery 상태였다. 어? 이상하다? 나는 분명 조금 전에 택배를 받았는데 왜 이러지?


'혹시 내가 배달원이 현관 앞에 미쳐 놔두기 전에 두 손으로 직접 받아서 스캔을 깜빡 한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서 제미나이와 상담이 아닌 씨름을 하였다. 얘가 하는 말이 '배달원이 최종스캔하는 걸 깜빡한 거 같다. 저녁에 물류센터로 돌아가면 처리될 것이다' 이건 답변을 얻었다. 그래도 뭔가 불안해서 나는 계속 질문공세를 이어갔고, 들려오는 답은 뭔가 뾰족한 수도 없이 같은 대답일 뿐이었다.


그래서 다시 택배상자가 놓여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 박스를 유심히 살피니 박스 겉면에도 역시 tracking number가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동생이 준 것과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얼른 폰으로 조회해 보니 '수령자가 직접 받아서 배달이 무사히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최종상태가 뜬 것을 확인하고 결국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머니 앞으로 온 게 뭔지 궁금해서 보낸 회사를 구글링 하고 이후 어머니에게도 여쭤보아 궁금증을 해결하였음)


그리고 동생이 비행기에 있었을 동안 보냈었던 메시지를 싹 다 삭제하였다. 새 카카오톡 말 많고 탈 많지만, 해외 버전은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아래 링크 참조) 소소하게 업데이트된 지라 쌍방 메시지 삭제 기간이 하루로 길어진 거에 대해서는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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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flk1004/14



그리고 동생이 부탁했던 택배는 오후 세 시가 넘으니 예상한 대로 우체부가 마침내 무사히 배달해 주어서 이것 또한 동생에게 알려주었다. 이건 이미 검증(?)된 것이므로 굳이 다시 tracking 조회는 하지 않았다.





이렇듯 지나고 보면 정말 별거 아닌 것들인데, 나는 모든 걸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점심 먹기 전에도 중요한 이메일을 캘리포니아로 보냈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뭔가 마음이 편하지 않고 껄끄러워서 또 코파일럿 앞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지 모른다. AI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건 오히려 병을 더 키울 수 있기에, 더 이상 물어봤자 똑같은 말만 반복이니 그냥 마음 푹 놓고 며칠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수밖에. 일단 이 사람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는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이것 또한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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