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행복

by 이혜

얼마 전까지 아침 식사는 요거트에 사과 한 알을 껍질 째 썰어 넣고 먹는 것이었다. 아삭아삭한 사과의 식감에 꽂혀서 질리지도 않고 먹었다. 그 전에는 보통 아침 식사로 빵을 먹는 것을 좋아했다. 식빵 한쪽을 구워서 반숙으로 익힌 계란 후라이와 먹거나 라즈베리 잼을 발라 커피와 먹었다. 빵을 끊은 것은 지난가을에 식사빵이 아닌 단 빵에 꽂혔기 때문이다. 베이커리와 아이스크림, 디저트 카페에서는 너도나도 밤이나 고구마를 메인으로 내세운 신제품을 쏟아냈고 구황작물 마니아인 나는 단 빵을 식사와 간식을 구분하지 않고 빠져서 먹었다. 마침 재택근무 시기였고 나는 다시 토실토실하게 살이 올라 당분간 빵을 끊기로 했다.


그러다 주말에 오랜만에 식빵 두 봉지와 샐러드를 주문했다. 한 기관에서 진행한 비즈미팅을 참가했더니 생각지도 못하게 파리바게뜨 상품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파리바게뜨에서 제일 맛있는 식빵인 상미종 식빵에 달걀 샐러드를 스프레드 해서 먹었다. 뜨끈한 커피와 보드라운 빵을 먹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려서 도대체 누가 이런 것을 탄생시킨 것일까? 비록 오늘은 식빵 한쪽이라는 소박한 아침 식사였지만 밀가루와 버터의 위력을 알게 된 것은 드라마 보조작가를 할 때였다. 생방송급의 스케줄에 밀려오는 수정 작업과 밤샘에 나와 동료는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런 우리를 구원했던 것이 밤샌 후의 아침에 아무 생각 없이 먹은 롤링핀의 갓 구운 빵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늘까지 공유하기로 했던 기획안을 회사에 전달했다. 명절 직후에 만난 감독이 준비 중인 시나리오 수정본을 펼쳤다. 다른 회사의 작품이고, 이미 촬영을 앞두고 있어 굳이 이 시점에 읽어도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래도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귀가한 늦은 밤에 곧장 워터마크를 찍어서 보낸 그 마음에 나도 보답하고 싶었다. 시나리오는 듣던 대로 12월에 봤던 버전보다 훨씬 좋았다. 좋아진 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아쉬운 부분에 대해서는 배우와 함께 만들어 가면 좋을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시나리오를 읽는 중에 한참 소식이 없던 회사에서 미팅을 잡자는 연락이 왔다. 목소리가 성우처럼 멋있는 분이셨다. 그분은 나를 기억하는데 나는 그분이 기억에 없어 민망한 정적이 잠깐 있었지만 무사히 미팅 날짜를 잡았다. 경력으로도 나이로도 한참 아래지만 업무 상의 통화에서 동등한 텐션이 유지되는 것을 보면 나도 이제 한 사람의 몫은 하는 것 같다.


감독에게서 답장이 왔다. 이미 배우와 상의하며 가열차게 수정 중이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내가 지금 상황에서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 그리고 어쩌면 그가 시나리오를 보내며 바랐던 것은 응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화이팅!'하고 답장을 보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는 산책을 했다. 식사를 한 후 30분가량의 산책이 아주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것 같다. 비록 오늘 대기 상태가 매우 나빴지만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들으며 걷고 있으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산책 코스는 집에서 시작해 탄천변을 크게 돌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탄천까지 나가야 하는 것이 심리적인 장벽이었지만 사실 물리적인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문제는 항상 마음에 있는지도 모른다. 뜨끈한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하자 확실히 활기찬 느낌이 들었다.


몸을 데운 김에 스트레칭까지 하기로 했다. 겨울에는 몸이 절망적으로 뻣뻣해진다. 규칙적인 운동이 없으니 상태는 더 심각하다. 어깨를 피는 것과 광배근을 써서 견갑골을 내리는 것, 갈비뼈를 모으며 숨을 끝까지 내뱉고 다시 들이쉬는 호흡마저도 힘이 든다. 격정적인 복합 유산소 운동으로 칼로리를 태우고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 속편 하지만 사실 내 몸은 지긋하게 찢고 버티는 운동이 더 필요하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면서 다시금 깨닫는다. 몸을 편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과식은 금물이다. 코로나 직전까지 필라테스를 다녔던 때에 체중은 둘째치고 몸은 편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다시 알아보기로 했다.


씻으려고 하는데 대표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일 언제 이야기를 할 수 있냐는 메시지였다. 오전에 보낸 기획안을 모두 읽으신 것 같다. 회의 시간을 잡고 샤워를 했다.


책상 앞에 앉아 글쓰기의 행복에 대한 생각을 했다. 내가 '글을 쓴다'는 도구를 가져서 참 다행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행위이며, 나의 글은 나의 지문이나 마찬가지라 다른 사람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다는 것, 그것을 가졌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이런 생각을 의식적으로 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어째서일까? 내가 가진 것은 다소 초라해 보이고 가지지 못한 것은 더 빛나 보인다. 그 때문인 것 같다.


산책할 때 들었던 앨범을 계속 이어 듣고 있다. 종현의 솔로 앨범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목소리와 이토록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는데. 그가 지은 곡과 노랫말은 이토록 곱디고운데. 그럼에도 그는 생을 뒤로했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언제나 돌아오는 월요일이다. 다른 월요일보다 조금 더 행복했다. 맛있는 빵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몸을 움직이고 땀을 내면서 내가 살아 있는 감각을 느꼈다. 나를 먹이고 살리는 일과 인간관계를 통해 세상에 발붙이고 있다는 안도를 느꼈다. 내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가 나일 수 있는 글 쓰기라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지 느꼈다.


행복은 과정에 있다. 과정은 즉 디테일이다. 삶에 빼곡히 들어찬 디테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을 자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다만 행복을 느낀다고 해서, 풍요롭다고 하여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암전 시키고 선택할 고요함과 평안이 있는지도 모른다. 내겐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블랙홀 같은 영역이다.


평범한 일상은 없다. 금세 흐트러지고 깨지기 일쑤다. 내일이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삶이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자. 행복하더라도 그것이 꼭 살만하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매일매일 새롭게. 동시에 무던하게.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이지만 내가 내 삶의 증인이 되어주자. 감사하게도 나는 그것을 글로 남기는 데에는 자신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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