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간의 정신과 치료를 마치며
작년 3월부터 시작한 정신과 치료가 모두 끝났다. 지난 회사에서 제정신으로 버티기가 힘들어졌을 무렵부터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하고 적응을 할 때까지 꼬박 1년 간 매달 두 번 병원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입 안에 쏟아 넣어야 할 정도로 많은 약을 삼켰어야 했는데 안정기로 접어든 올해 1월부터는 세 알로 줄었고 이번 달에는 두 알. 그리고 치료가 끝난 지금부터는 마지막으로 받은 항우울제 한 알을 이틀에 한 번씩 복용하고 나면 끝이다.
병원에서는 내게 어떤 병명을 진단하지 않았다. 내가 복용했던 약은 항우울제와 항불안제였지만 딱히 내가 우울증을 앓았던 것은 아니다. 그저 견디기 힘든 곳에서 지속적으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아무 자극이 없는 날도 불안함을 느끼는 증세였다. 선생님은 항상 더 자고 싶냐고 묻곤 했다. 육체는 물론 정신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수면'이라고, 그래서 나는 마지막까지 잠에서 잘 깨지 않는 약을 먹었다.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을 하지 않게 해주는 약도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약을 먹어도 그 정도로 생각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도 잡생각을 많이 하고 살았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과 매일 저녁에 먹는 약이 모든 것을 바꿔놓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마구잡이로 엉켜버려서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고, 끝없는 무력감에 빠졌을 때 벗어날 방법을 생각하는 마음의 여유 정도는 줄 수 있다. 그 자그마한 마음의 여유가 얼마나 많은 것을 변화시키는지 사람들은 알까? 치료를 받으며 마인드셋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고, 이제는 마인드 컨트롤로 어느 정도는 평상심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의 여유, 그 공간만은 절대로 빼앗기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의사들이 나에 대해 뭘 알겠어. 고작 10분 정도 이야기하면서.'라는 사람들의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 나는 오히려 나에 대해 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고 파악한 것이 더욱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아무 기대 없이 약이나 타려고 찾았던 병원이었는데 의외로 짧은 상담에서 수확을 얻었다. 선생님에게 대단한 이야기는 듣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는 사람을 함께 관찰하고 탐구해본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선생님과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지만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의사와 환자라는 관계로 만난 인연은 결국엔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마침 선생님도 병원을 떠나 다른 곳에 개원을 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아주 타이밍 좋게 헤어진 셈이다. 떠나면서 몇 번이고 감사했다는 말을 전했다. 선생님 덕에 살았다고. 덕분에 힘든 시간을 정말 잘 버텨낼 수 있었다고.
다시는 병원을 찾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어떤 증세가 다시 발현되면 병원을 다시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사람에겐 기분이 좋은 날도 있고 좋지 않은 날도 있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다시 좋았다가 하면서 바뀌고 회복하는 것이 정상인데 만약 안 좋은 기분이 2주 정도 지속되거나 안 좋은 생각을 끊지 못하고 2주 동안 계속 떠올리게 된다면 병원에 다시 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다. 상담을 통해서도 느꼈지만 병원에 내원하는 것만 보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파악이 가능한데 예약을 한 번도 빠트린 적이 없고, 이렇게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치료가 끝났다고 말할 때까지 오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성실하고 열심이고 확실한 사람이라고. 비록 창의력이 중요한 업계에서 일하고 있어 그 덕목이 최고로 꼽히진 않을 수도 있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 했다.
너무 뻔하지만 항상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넌 이미 괜찮은 사람이야. 그러니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의 이 말은 마지막으로 복용해야 하는 약이 끝난 후에도, 아마 앞으로도 쭉 내 마음을 어루만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생리통이 심한 나는 항상 극심한 생리통이 찾아오기 직전에 진통제를 먹는다. 미리 먹어줘야 통증을 느끼는 정도가 심해지지 않고 나아진다는 이야기를 산부인과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아플 땐 참거나 그냥 앓고 있지 말고 병원에 가자. 병원에 간다고 해서 당장 씻은 듯이 낫진 않겠지만 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면 꽤 많은 것들이 바뀐다는 생각이 든다. 병원으로 가는 걸음걸음은 나를 아끼고 보살피고자 하는 마음이고 살고자 하는 나의 삶에 대한 애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