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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폴스 Dec 25. 2019

교감선생님, 6학년을 하라고요?

학년 배정과 업무 배정으로 바라보는 학교 속 정의

1. 1년 살이 식물 학교


 12월 말입니다. 2학기의 막바지입니다. 학기 말은 1년간 사랑했던 혹은 힘들게 했던 아이들과 이별이 곧 다가온다는 걸 의미합니다. 교사들은 학생들과 이별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만남을 준비합니다. 학교는 1년 단위로 마감하고 새로 시작하는 다년생이 아닌 1년 살이 식물과 닮아있습니다. 지금 이 시기의 학교는 한 해의 마무리와 한 해의 시작이 공존합니다.



 한 해의 시작은 업무와 학년 배정으로 시작됩니다. 내년에 다른 학교로 나갈 선생님이 추려지고 남아있는 선생님들끼리 학년과 보직을 구성합니다. 여러분들의 학교는 업무와 학년 배정을 어떻게 결정하나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결정되었나요?


2. 교감선생님, 전 6학년이 싫어요!


 제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업무전담팀이 있습니다. 업무전담팀은 교무부장, 연구부장을 포함해 구성된 팀에서 학교 전반적 업무를 수행합니다. 물론 수업 시수는 10시간에서 16시간 남짓으로 적습니다. 소수의 선생님들이 업무를 전적으로 하는 대신에 담임교사들은 업무의 부담감에서 해방됩니다. 초창기 이런 시스템은 교사들에게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꽤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전담팀과 담임교사들 간 소통 문제, 수업시수 불균형으로 인한 문제 등이 발생했습니다. 올해까지 6년 간 업무전담팀을 유지한 우리 학교에 발생한 문제는 바로 '6학년 지원자가 아무도 없다'였습니다.

 

 여러분들이 내년 담임을 선정할 때 학년을 고를 수 있다면 어떤 학년을 고르겠습니까? 담임만 하면 되고, 업무는 없습니다.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원하는 학년은 달라질 수 있지만 기피 학년은 일반적으로 6학년일 겁니다. 수업 준비의 부담과 생활지도, 6학년 자체 업무 등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6학년이 아니더라도 모든 교사들이 특정 학년을 기피할 경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 학교의 교감선생님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기피 학년과 업무를 해줄 교사를 찾습니다. 젊은 교사, 6학년 경험이 있는 교사들을 찾아 부탁하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습니다. '승진을 도와주겠다' '성과급을 주겠다' 등의 보상으로 유인하지만, 승진에 관심 없고 성과급을 덜 받고 3~4학년을 하고 싶어 합니다. 교감선생님은 누군가 자원했으면 좋겠다며 교사 전체에게 말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선택지의 불공정성'때문입니다.


3. 학년 배정과 업무 배정으로 보는 학교 속 정의

 

 <정의론>의 저자 롤즈는 '무지의 장막' 이론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런 상황은 학교에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장막 뒤에서 카드를 뽑아 학년을 선택을 해야 한다고 봅시다.


 누구는 6학년, 누구는 3학년을 선택하고 운에 따라 결정된다면 과연 이 방법이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선택지의 불공정성은 결국 사회가 정의롭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그 선택지 간의 차이가 없도록 하자는 것이 롤즈의 입장입니다. 사회에서는 복지, 교육 분야 등 사회보장제도로 균형을 맞춥니다. 학교에서는 바로 성과급과 업무입니다. 가령 1~5학년은 업무가 있고, 6학년은 업무가 없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학년 간 균형이 맞춰집니다. 이렇게 해도 6학년이 더 불합리하다면 성과급을 높게 준다는 등의 조건을 추가해야 합니다. 이 방법이 롤즈가 말하는 학교를 보다 정의롭게 하는 방법입니다.


 교감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을 가장 미안하게 느낀 교사가 기피 학년과 업무를 하는 건 정의롭지 않습니다. 젊은 교사라는 이유로, 남자 교사라는 이유로 희생해서 학교가 꾸려지는 건 민주적인 방법이 아니라 폭력적인 방법입니다. 한 명이 희생하는 대신 대부분이 만족하는 업무 전담팀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인 공리주의적 접근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학교에서는 내년부터 업무 전담팀을 없애는 방향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저는  이 과정이 보다 정의로운 학교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학교는, 정의로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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