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폴스 Jan 07. 2020

바다를 품은 석화

석화구이와 석화찜

 친구들과 모임을 잡았다. 남자 모임에서 친구 한 녀석은 빠져도, 술은 빠질 수 없다. 어쩔 땐 얼굴을 보기 위해 모이는 게 아니라 술을 마시기 위해 모이는 것 같기도 하다. 여느 날처럼 마실 술의 종류를 정하고 어울리는 안주를 고르는 것이 우리들의 방식이다. 오늘은 소주였다. 


 "요즘 석화가 제철인데. 소주에 석화찜 어때?"

 모임 날짜를 정하기 위한 과정은 더디지만, 안주를 고르는 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그렇게 드르륵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산지직송이라고 하얀 종이에 서툰 글씨로 쓰여 있었다. 종업원은 통영에서 매일 아침마다 가져온다고 했다. 석화찜을 주문했다.  

  석화는 돌에 핀 꽃이라는 뜻이다. 결국 먹는 건 껍질 속 알맹이인 굴이지만 왠지 석화가 더 근사하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 대신에 꽃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석화는 껍데기만 붙어있을 뿐이지만 굴보다 더 싱싱한 느낌이 든다. 우리는 이토록 어리석다. 술을 마시면 다음날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또 술잔을 기울이는 것처럼 말이다. 

 누가 석화를 꽃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누구의 눈으로 봤길래 석화의 거친 결이 꽃 잎처럼 느껴졌을까.


 냄비 한 가득 석화가 담겨 나왔다.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불을 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벌렸다. 아니 꽃을 피웠다. 겨울을 견딘 동백꽃 꽃봉오리가 봄이면 활짝 피듯 석화가 피었다. 우리가 먹는 석화는 아직 피지 못한 꽃봉오리다. 


 제주도에서도 작은 어촌 마을이 고향인 나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가 끝나면 어김없이 바다로 나갔다. 바다는 우리들에게 놀이터이자 식당이었다. 겨울이 되면 친구들과 바닷가 돌에 붙어있는 굴을 따먹었다. 주먹만 한 돌을 주워다 껍데기를 내리친다. 껍데기 속을 돌로 깨면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큼의 굴이 나온다. 돌로 껍질을 부시다 보니 굴에는 작은 껍질이 묻어 나오기도 했다. 너무 강하게 돌로 내리치면 굴이 잘라지기도 했다. 그러면 손으로 조심히 건져 바닷물에 휘휘 저었다. 껍질이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삼키면 안 되고 굴을 혀로 한 번 훑는다. 그리고 알갱이가 느껴지면 퉤퉤 하고 뱉어내고 없으면 목으로 넘어간다. 형들을 따라다녔기 때문에 굴이 몸에 좋은지 어디에 좋은지도 몰랐다. 그렇게 굴을 먹을 때면 사촌 형은 

 "짤조름하고 맛있다."

 라고 말했다. 내가 굴을 찾지 못하자 사촌 형이 "멍청아"라고 말하며 굴을 찾아줬다. 

 석화가 그토록 찬란하게 꽃 피우고 싶어 했던 굴은 바다를 담고 있었다. 억척스러운 바다 파도를 견뎌야 했다. 바위에 붙어 파도를 견디기 위해 단단한 껍질을 가졌지만 그 속은 너무나 여리고 곱다.

 석화의 껍데기만 수북이 쌓일 때쯤 취한 녀석들이 일어났다. 술에 취한 친구의 모습을 보며 키득키득 놀리지만 택시를 태울 때는 택시 기사에게 조심히 집으로 가 달라는 정성 어린 부탁을 한다. 친구들과 석화는 닮았다. 오늘 석화를 먹은 이유가 있었다.



* 짧은 음식 상식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는 굴은 타우린, 철분, 구리 등이 풍부해 빈혈 예방이나 숙취해소, 콜레스테롤 감소에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찐빵과 호빵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